금강과 다리(橋)/금강교

금강이 얼었네

ih2oo 2016. 1. 25. 20:49

2016년 1월 25일 월요일


요즈음 매우 춥다.

요 며칠째 온 세계가 얼었다는 소식이다.


제주공항에서도 폭설과 강풍으로 오늘 오후 8시까지 사흘째 항공기 운항이 통제되어 9만 명에 가까운 체류객의 발이 묶였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다.


내가 사는 공주(公州), 금강도 꽁꽁 얼었다.


▲2016년 1월 25일의 꽁꽁 언 금강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보다 요즈음의 추위는 추위도 아니다.

지금부터 5, 60년 전에는 세숫대야나 문고리에 물 묻은 손이 척 척 달라붙는 추위 속에서 살던 때는 금강물이 항상 얼었었다.

초겨울에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한겨울에는 겨우내 얼어서 얼음의 두께가 2, 3m도 넘어 보였고 그것을 톱으로 잘라 운반하는 모습도 보았는데

그 큰 얼음덩어리를 잘 보관하였다가 얼음 공장에서 여름철에 요긴하게 쓰는 것 같았다.

이는 예전의 강물은 물도 깨끗하여 그냥 마실 만하였고 지금처럼 제빙 기술이 없었을 때이니 강 얼음을 보관하여 활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강물이 꽁꽁 얼었을 때는 나룻배가 다닐 수 없어서 얼음 위를 걸어서 다녔다.


6.25 한국 전쟁 당시 끊어진 금강교 밑으로 다니던 나룻배에 얽힌 사연은 한둘이 아니다.

오늘은 그중 몇 가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룻배는 사람을 태우는 것과 차를 싣는 찻배가 있었다.

사람 태우는 배는 사공 혼자서 상앗대(전에 그렇게 들었다.)를 저어서 강을 건넜고

찻배는 평평한 모양의 뗏목과 같은 큰 배로 한 편에 4, 5명씩 어깨에 둥근 통나무를 물속 강바닥에 대고 어깨로 밀어서 배를 움직였다.


배가 강을 건너려면 물살을 거슬러 가로지르므로 힘도 들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물론 강을 건너다니는 배가 많지 않아서 건너려는 사람이나 차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배를 타려는 사람들은 양쪽 강가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나루터 양쪽에는 간이음식점이나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나룻배가 닿는 공산성 쪽

금강교가 놓이기 전에 나룻배가 건너다녔던 나루터가 공산성 아래쪽이었는데

지금의 웅진탑을 쌓기 전의 움푹 들어갔던 부분에도

여러 채의 민가가 있었고 거기서 배를 타려는 손님에게 먹을 것을 팔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룻배를 타기 위해 가는 길이 백사장에 나 있었고 나룻배로 가는 그 길 양쪽에는 음식이나 술을 파는 집들이 죽 이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금강물이 언 모습을 보니 옛날 금강교가 없던 시절의 생각이 나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혹시 이 내용과 다르거나 또 다른 사연이 있으신 분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댓글로 주셨으면 한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연미산 밑이 나의 고향이다.

연미산 터널 밑에서 신작로 둑 밑 길로 걸어서 전막까지 와서 나룻배를 타고 6년간 초등학교(전에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금강교에서 바라본 연미산


백제큰다리 밑 금강물도 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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