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기관(관공서,관광지)

효자 향덕 행적비(孝子 向德 行跡碑)

ih2oo 2023. 5. 28. 18:18

2023년 5월 24일, 공주시 소학동에 있는 효자 향덕 공덕비를 가본 이야기다.

장*수 회장 차로 계룡면을 가던 중에 잠깐 들른 곳인데 거기에는 비각이 서 있고 주변에 '효자 향덕 행적비'와 '공주 소학리 효자 향덕비'가 있다.  비각 안에는 잘라져 나간 비석과 바로 옆에 온전한 비석이 서 있는데 잘린 비석의 끝에 '之閭'만 보이고 온전한 비에는 '효자향덕지려'라 적혀있다.

효자 향덕 행적비를 자세히 읽으니 띄어쓰기가 부정확하고 글씨가 작아서 일기가 쉽지 않았으나 애써 읽은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孝子 向德 行跡碑

향덕(向德)에 관하여 그 효행을 전하여 주는 문헌은 적지 않으나 대체로 보아 삼국사기(三國史記)가 근간이 되고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공주군지(公州郡誌) 등으로 많은 사람에게 알여지게 되었다. 효자 향덕은 신라 경덕왕(新羅景德王) 때 웅천주판적향(熊川州板積鄕)(公州郡 鷄龍面 巢鶴里)에서 태어났다 하며 아버지의 이름은 선()이고 자는 번길(藩吉)이라 전하고 있다. 향덕은 태어날 때부터 천성이 온순하고 훌륭한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아 효도와 사람에게 공손함이 남달라 온 고을에서 그 행실을 추앙하게 되었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경덕왕 14(755) 전국에 흉년이 들고 유행병 마저 번져 온 백성이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향덕의 집안은 기근과 병마에 시달려 죽음을 기다리게 되니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향덕은 밤낮으로 입은 옷을 벗지 않고 병들고 굶주린 부모를 봉양하는데 온 정성을 다 하였다. 어머니가 종기로 들어 눕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내고 영양이 실조 되자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봉양하다 급기야는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드리니 부모의 병도 차차 낫게 되었고 그의 정성은 모든 이로 하여금 눈물겹도록 지극하였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향덕의 넓적다리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부모 봉양을 위해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다리 살이 베인 곳에서 피가 흘러내려가므로 혈흔천(血痕川)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향덕의 효행이 온 마을에 퍼져 마을에서 주로 주에서 왕께 보고되니 나라에서 벼 삼백 곡, 집 한 채 그리고 식구 수 대로 밭을 내려 향덕의 효행을 포상하고 관에서 사적을 기록한 비를 세웠다. 지금도 이곳에는 신라 경덕왕 때 건립한 구비와 조선시대 공주 관찰사가 세운 신비가 유존하고 있으며 지금도 이 마을을 효가리(孝家里)라 부른다. 비록 가난한 시골 사람이지만, 제 몸을 버려 어버이를 생각한다는 것은 진실한 효심에서 우러난 것이다. 덕의 숭고하고 진실한 효행은 후세 국민이 본받고 충효의 교육 도장으로 가꾸고자 하여 79~80에 지방비를 투입, 이곳을 정화하였다. 공주 군수가 세우고 석헌 임재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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