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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교에 얽힌 사연

금강과 다리(橋)/금강교

by ih2oo 2011. 1. 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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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4일 금요일

금강교에 얽힌 사연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금강교가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끊어졌을 때였다.

지금은 자동차도 사람도 오토바이도 모두 잘도 다니지만, 그 당시에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 당시 어린애였으니 추운 겨울에는 배를 타고 내리는데도 어려웠고 잘 못 뛰어내렸다가는 물에 빠지기도 하여

바짓가랑이가 젖은 채 학교에 가면 발목이 어찌나 시린지 그때 생각을 하면 나 자신 고생도 많이 했구나 싶다.

지금은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금강교가 끊어진 후로 나룻배에 얽힌 사연이 하나 둘이 아니다.

 

첫째, 장마로 강물이 범람하면 중학생 이상만 건너주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어리다고 중학생 이상만 태워 건너주니 당시 국민학교 다니는 우리는

        학교도 못 가고 강물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기간이 길 때는 일주일 걸릴 때도 있었으니

        그때 결석일수가 매년 10여 일이 넘었었다.

 

(나의 생활기록부. 결석일수가 5학년 때 11일, 6학년 때 30일. 결석 사유가 모두 도강(渡江-강을 건넘)임. 지금은 천재지변일 때는 결석으로 안 치겠지!)

 

 

둘째, 학교에서 집에 갔다 오라고 돌려보낼 때 어려웠다.

        5학년 때 우리 선생님은 습자시간에 꼭 준비물 검사를 하셨고 미비한 애들은 집에 돌려보내

        가져오도록 하셨는데 나는 우리 집 벼루가 어찌나 무거운지 책보에 싸서 가져오기가 싫어서

        늘 가져오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서 가져와야 했다. 그럴 때마다 강 건너 집에 갔다 오면 공부는 끝나고

        학교는 파해 버렸다.

셋째, 금강교 고쳐놓는 공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 끊어졌는지는 보지 못하여 알 수 없었지만, 나룻배를 타고 다니는 동안에 여러 해에 걸쳐서

        금강교 공사는 이어졌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설재를 세우고 기술자들이 그 높은 무지개 다리 위에서 뜨거운 쇳덩어리를 던지고 받는 등

        묘기도 부리는 것도 보았고, 평지에서 무거운 무지개다리 철판을 움직이는 근로자들의 힘을 합치는 소리도 들었고

        공사하는 중에 부주의로 사람이 강물에 떨어져 죽었다는 소리도 들은 적도 있었다.

넷째, 공주 금강교는 단기 4289년에 준공됐다.

        여러 해의 공사 기간을 거쳐 드디어 금강교는 준공되었다.

        준공식에는 시골 어르신들도 구경하러 나오시고 여기저기서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을 처음 봤다.

        배를 타고 다니던 강물 위를 걸어서 건너가니 이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 있겠나.

       단기 4289년이니 서기로는 1956년이며, 내가 중동학교 6학년 때이다.

       국민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배를 타고 학교 다닌 셈이다.

       이제 배 타고 다닐만할 나이 때 다리가 놓인 것이다.

다섯째, 준공 당시 금강교는 넓었었다

       처음 준공 당시 금강교는 제법 넓어 보였다.

       당시에 버스 두 대가 여유 있게 비켜갈 수 있었을 정도였었다.

       그 후로 다리는 여러 번 보수 공사를 했다. 바닥의 아스팔트를 뜯어내기도 하고 덧씌우기도 하고

       쇠붙이에 색칠하는 등 금강교는 준공 이후로 여러 번 고쳐졌고

       지금은 일방통행으로 강북에서만 진입이 허용되고 강남에서는 백제큰다리로 돌아서 강북으로 갈 수 있다.

       지금 생각으로는 공법이 발달한 요즘 이 금강교에 전용 인도교를 설치하여 차량 전용 도로를 만든다면

       교통 혼잡도 줄이고 금강교를 건너는 사람들의 금강에 대한 운치도 더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여섯째, 금강교는 1956년 9월에 준공된 다리다.

       공주 금강교의 남쪽 끝에서 얼마 안 되는 곳에 하얀 금강철교 안내판이 서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강교 남쪽 근처에 세워진 안내판)

 

 

이 내용 중에 『1952년에 복구하였으며』는 것은 금강교가 끊어진 이후의 경험으로 볼 때 의문이 되는 부분이다.

1952년은 다리가 끊어진 후 2년 뒤인데 그 당시 복구되었다면 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나. 아마 그때에 복구공사를 시작했을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복구하여 준공한 것은 1956년이 맞다.

그 증거로 2010 세계대백제전의 공주 옛날사진전에 전시된 금강교 준공 당시의 사진이 이를 증명하고

현재 금강교의 남단 무지개다리에 붙은 다음과 같은 표시가 더욱 확실하게 증명한다.

 

 

 

(금강교의 남단에 붙은 제작소 표시판 )

 

 

 (단기 4289년 흥화공작소 노량진공장 제작)

 

 

 

(2010 세계대백제전의 공주 옛날사진전에 전시된 사진. 금강교 준공식 때 찍은 사진. 여기에도 1956년 준공으로 되었다)

 

금강교의 아름다움

 

 

(백제문화제를 밝히는 금강의 루미나리에) 

 

 

(금계국과 어우러진 공주 금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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