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4일 14시 국립박물관 강당에서 있었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윤대영 교수의 강의 제목 '인문학으로 보는 세계유산'의 세 번째 강의로 베트남 호이안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후 2시 시작인데 장*수 선생님 덕분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진묘수가 기다리는 공주박물관 앞입니다.

▲국립공주박물관에

 

1. 아시아 역사 속의 베트남, 그리고 호이 안

1) 주요 연표

기원전 111, 한 무제, 남 비엣(南越) 정부-북속(北屬) 시기-응오 씨 왕조-딘 왕조-띠엔 레 왕조-리 왕조- 쩐 왕조를 거쳐 응우엔 왕족까지 나열되어 있음 

BC 200년경 세워진 남베트 독립왕국은 중국에 2차 정복되었다가 물리치고 양분되었다가 1802년 통일되었다. 프랑스 식민지로, 프랑스 속령으로 지배를 받았다. 1945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프랑스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렀고 1954년 승리했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소련이 지원하는 북부와 미국이 지원하는 남부로 분할되었다. 그 후 남북의 베트남 전쟁 휴전 이후 1973년 미군이 철수했으나  1975년 북베트남의 공격으로 남베트남 정부는 붕괴되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합되었다. (다음 백과 참조)

2) 베트남의 남진(南進)과 영토의 확장

남띠엔(남진)은 11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베트남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한 일을 말한다. 현재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연안의 전역을 영토로 하고 있다. 11세기 이후 각 왕조는 모두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시켰다. 베트남의 역대 남진 정책은 모두 700년에 걸쳐 진행되어 처음보다 3배나 확장되었다.

베트남의 동쪽을 동해로 부르고 중국에서는 남중국해라고 부른다는데 왜 그리 동안(東岸)으로만 긴 나라가 됐냐면 서쪽의 산악지역 보다 확장하기 쉬웠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3) 호이 안(會安)

https://cafe.daum.net/vlfflvlsgodnth/Urlr/2?q=%EB%B2%A0%ED%8A%B8%EB%82%A8+%EC%A7%80%EB%8F%84&re=1 

 

베트남 지도

 

cafe.daum.net

호이 안 시는 베트남 중부 꽝 남 성의 도시이고, 다 낭 시로부터 30km 떨어졌고 투 본 강의 하구에 위치하는 오랜 항구 도시다. 인구는 약 12만 명(공주시 인구는 102,747명)이다. 음식으로는 까오러우, 따오퍼, 껌가호이안 등이 유명하다. 모두 나는 한 번도 안 먹어 본 생소한 이름이다. 쌀국수 이야기만 들었는데 그것도)

까우러우~돼지고기, 향채, 숙주, 허브 등이 첨가된 쌀국수

2. 호이 안의 전사(前史), 참파(Champa, 192~1832)

1) 해양국가

1306년 당시의 참파~북쪽의 베트남, 북서쪽의 라오스, 서쪽의 앙코르 왕국

참파인의 해상교역 전통

-고원 지대에서 생산되는 상아, 코뿔소 뿔, 침향, 보석 등은 주요 수출 품목

-(7~10세기) 향료 무역

2) 15세기 후반부터 쇠퇴

15세기 후반 베트남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16세기에 참파 활동무대가 남쪽으로 이동

북쪽에서 내려온 용우엔씨가 꽝남 정권 수립~이때부터 호이 안은 외항으로 발전

3. 중부 베트남의 교역도시 호이 안(會安)의 발전

1) 배경

-참파의 해상 무역 전통 계승, 교역의 시대에 호이 안 번영

호이 안은 당시 용우엔씨의 대외 무역항으로 서구나 중국, 일본 및 동남아 각지 상인이 모여듦

꾸라오 짬 섬 근처에서 난파선 발굴

16세기말 이후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중국인, 일본인이 내항하여 국제 무역항으로 번영함

2) 서구의 상인과 선교사

-1498년부터 바스코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 이후 대거 아시아로 진출함, 1511년부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차례로 동남아시아에 들어옴

3) 중국~명나라의 해금정책 해제로 1567년부터 중국의 남해 무역이 자유로워져서 베트남으로 오기  시작

4) 일본~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朱印船(주인선) 제도의 창설로 일본인 거리 형성

(주인선(朱印船)~붉은 글씨로 된 통상 허가증(주인장)을 발급받아 무역 허가를 받은 일본 배)

來遠橋(내원교-일본교)-폭 3m 길이 18m, 중국풍 지붕의 부교로 안에 절 있음, 1593년 일본인이 건설

주인선 무역이 왕성한 17세기 경에는 일본인 마을이 있었고 300명 이상 일본인 거주함

5) 한국

호이안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각별함

1687년 추자도에서 풍랑 맞은 배가 표류, 호이안에 체류 후 수개월 후 중국 상선으로 조선으로 귀국

관공사(關公寺)-관제묘(중국인 거리에 있는 관우 모신 곳)

그들이 느낀 호이안의 이미지-누에 5회 쌀 수확 3번, 주식 걱정 없음,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염려 없음, 아름다운 단청 입힌 누각이 화려, 진기한 새와 이상한 동물 집집마다 길러, 기이한 꽃과 보화가 곳곳에.

6) 쇠퇴~1630년 도쿠가와막부가 쇄국령 반포로 일본과의 무역 중단으로 일본인들은 유럽 상인의 통역 겸 중개자로 전락. 17세기 후반 천계령 발표로 연해 주민들이 해안 접근 못함, 연해 주민 내륙으로 보내 방어 시설   건설 노역 시킴. 교역에 부정적인 영향 끼침

중국인 거리의 화교 회관~복건회관(1773년 건설 화교회관), 광동회관(1786년 창건 광동계 중국인 회관), 1770년대 떠이썬 운동으로 도시 파괴 후 재건하여 19세기까지 이름, 떠이썬 정권은 해외 무역 반대, 1802년 프랑스인들에게 다낭 항구에서 독점 무역권 허가,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번영은 다낭 항으로 옮겨짐

4. 현재의 호이 안

15~19세기의 동남아 교역항 유산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알려져 있음

1) 참파의 흔적

구시가와 꾸라우짬 섬은 2009년 유네스코의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됨

2) 중국의 흔적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원래는 화교들이 관세음보살을 모시던 사원), 무역 도자 박물관, 중국인 거리를 중심으로 오랜 건축물이 남아 있고,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3) 일본의 흔적

호이안의 교외에는 1647년에 죽은 곡미차랑 병위란 이름이 새겨진 일본인 묘지(1930년 일본인이 복원)

4)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흔적

중앙시장, 판보이쩌우 거리의 식당, 살롱

 

▲국립공주박물관 인문학 강좌 3강 내용 중 하나

꼭 가보라는 강사님의 권유와 함께 보여준 사진임

 

▲국립공주박물관 인문학 강좌 3강 강의 후 베트남에 대한 보충 설명하는 수강생

베트남은 우리나라와는 많은 인연이 있는 나라이고, 관광지가 많은 걸로 들었는데 유독 이곳 호이안에 대하여 주제를 삼았는지 궁금하고 역사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관광 자원의 사진과 곁들인 설명이었으면 더 솔깃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박물관에서의 인문학 강의에 임한 여러 수강생들의 열정과 강의에 많은 준비와 성의를 보여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국립공주박물관 인문학 강좌 3강 강의 끝나고 귀가

 

▲국립공주박물관 인문학 강좌 후 돌아오는 길 백제큰길 모습

 

 

 

 

 

2023년 5월 10일 14:00부터 16:00까지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제5기 공주박물관대학 인문학 강좌 '인문학으로 보는 세계유산'  두 번째 시간으로 김혜진 교수 시간으로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라는 주제의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박물관 대강당을 메운 수강생들이 조용한 가운데 강사의 강의를 열심히 듣는 모습이 매우 학구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강사는 화면으로도 소개되었는데 소상한 소개 내용을 다 적을 수 없어서 사진으로 대체한다.

 

이날 진행된 강의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으로 담아서 복습하는 것이 나에게는 유리할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허용치 않아서 기억을 더듬거나 강의 자료집을 보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해의 질이 떨어진다.

김혜진 한국외국어대학 교수는 아테테대학교 고고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니 이 방면의 선구자인 것 같다.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

1. 그리스 문화유산의 역사

그리스문화유산은 현재 그리스 영토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프랑스와 스페인 남부, 이집트 북부, 키프로스, 터키 서안과 흑해 연안까지 확장되어 있다니 리스인들의 활동 영역은 에게해를 중심으로 지중해와 흑해까지 식민지를 건설했던 오랜 역사 때문인 것으로 본다.

고대 그리스에는 유명한  성소로 올림피아, 델피, 델로스, 네메아, 이스트미아 등이 있었는데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로 넘쳐났다.

관광산업에 대한 그리스 정부의 관심은 고조되어 1960대부터 고유의 음식과 전통문화를 지닌 그리스의 섬과 시골까지도 그리스의 문화유산을 비롯한 자연경관을 찾는 관광객은 2015년만 해도 그리스 인구의 배가 넘는 2천만 명이 넘었다.

그리스 정부의 국가전문화 상품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2. 그리스 문화유산 가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지중해 지역 여러 나라 정부와 민간의 관심은 요즈음 더 높아졌다.

그만큼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관광 사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홍보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세계유산으로 지정 돠는 것이 국제적인 홍보 효과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의 역사적 토대 위의 문화유산의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각국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그와 관련된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홍보하는 일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3.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

아테네는 서양문명의 본고장이다.

이 자랑스러운 도시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아크로폴리스와 그곳에 지어진 아테나 여신의 신전인 파르테논이다.

유네스코 엠블런으로도 지정될 정도로 세계유산을 상징하는 조형물이기도 한 이 건축물은 그리스 문화유산 가운데 단연 가장 먼저 꼽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시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아레오파고스, 아고라, 프닉스 등의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것은 서구문화의 정수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아테네라는 이름은 도시의 수호여신 아테나에서 온 것이다.

아크로폴리스~그리스어로 '높은'을 뜻하는 아크로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가 합쳐져서 생긴 표현이다. 높은 언덕에 있어서 시내 전역에서 볼 수 있고 파르테논 신전 등이 있다.

 강의 내용에 쓰인 화면의 하나이다.

 

4. 나가는 말:아크로폴리스 박물관과 문하재 반환운동

파르테논 전시실의 특징 세 가지

하나, 복제본을 같이 전시한다는 사실

둘, 조명과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이 어우러지는 전시공간의 구성

셋, 문화재의 전시 공간과 위치 등을 보아 문화재 반환의 필요성을 관람자가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2023년 4월 26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있었던 제5기 공주대학교 인문학 강좌 인문학으로 보는 세계유산의 첫 시간으로 고려대 신상철 교수의 강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유네스코 창설과 세계유산 제도의 정립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재 보호 정책 수행에 국제적 협력 필요성 인식 즉,

문화재 파괴 방지 및 보존에 관한 공동의 책임 의식 필요성 제기됨

1931년 아테네에서의 첫 회의'국제 역사적 기념물 건축가와 전문가 회의'로 아테네 헌장 제청

1945년 11월, 영국과 프랑스 공동주체로 유네스코(UNESCO) 창설 준비위원회 구성

1945년 11월 16일, 37개국 대표가 런던에 모여 유네스코 창설

유네스코의 사명은, 유엔의 전문 기구로서 교육, 과학, 문화, 정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국제협력으로 세계 평화와 지속가능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1964년 제2차 국제 역사적 기념물 건축가와 전문가 회의(베니스)에서 세계유산 제도의 정립 기반 마련. 13개 결의안 채택. 베니스헌장 제정,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설립 승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1965년 세계 역사적 기념물과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 비정부 기구다.

1972년 11월, 17차 유네스코 정기총회에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세계유산 협약)' 채택으로 본격전 세계유산 제도의 시행이 이루어짐

2. 문화재 개념의 변화 과정과 문화유사 보호 정책의 역사

근대 서구 사회에서 국가 차원의 문화재 관련 제도를 가장 먼저 수립한 나라는 프랑스

프랑스에서  문화재는, 기념비성, 역사적 의미, 오래됨, 미적 가치, 경제성 그리고 공동의 기억 등의 가치들로 설정됨

2016년 기준 총 42개의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을 보유한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뒤를 이어 독일과 함께 많은 수의 세계유산 보유국이다.

이집트 남부 나일강 고대문명 유적지 아부심벨 신전이 아스완 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어 북서쪽으로 옮긴 사연은 귀중한 문화재의 복원과 이전의 어려움이 있다. 이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됐다고.

중국의 원명원(圓明園)

로코코와 바로크식의 대리석 건축, 연못과 정원, 도서관까지 갖춘 호화로운 궁궐이 1860년 영불 연합군에 의해 소실, 폐허가 된 곳. 엄청난 문화재가 소실된 거기에 빅톨 위고 상?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일찍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중국의 원명원이 서양예술과 동양예술의 대표라고 하면서 전자는 이념적인 예술을 보여주고 후자는 몽환적인 예술을 보여준다고 했다.

빅토르 위고는 "원명원은 유일무이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몽환예술의 모범이기도 하다. 만약 몽환에 모범이 있다면"라는 말로 원명원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에 불을 질렀고 이어 1900년에 8개국 연합군이 재차 베이징을 공략하고 원명원에 불을 질러 원명원은 더는 재생이 불가능한 폐허로 되었다.

1983년 원명원은 유적지 공원으로 되어 산과 물은 어느 정도 복원되어 봄에는 봄놀이, 여름에는 연꽃제, 가을에는 국화제, 겨울에는 눈놀이 등 행사를 마련한다. http://korean.cri.cn/1760/2013/12/25/1s206912.htm

 

<STRONG>원명원: 사라져간 정원 </STRONG>

(사진설명: 아름다운 원명원)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적지 9중 두번째인 원명원(圓明園)은 사라져간 최고의 정원이다. 고도 베이징(北京)의 서북쪽에 최고의 풍수를 자랑하는 산수가 있어 예

korean.cri.cn

  

2023년 1월 26일에 다시 가본 문화예술촌 고흐, 향기를 만나다 展이다.

29일까지 전시 기간인데 이제껏 본 6곳의 전시장 소감을 설문조사지에 적어 제출했다.

마감 3일 전인데 오늘도 전시장은 홋홋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공주시 봉황로 134, 공주문화예술촌

 

▲고흐 향기를 만나다 전시회 안내판

 

▲고흐의 자화상

 

▲캐나다 국립미술관에 소장 중인 작품을 재현한 것으로 만질 수 있는 그림

 

 

▲도비니의 정원을 비롯한 전시 작품들

 

 

▲나무부리 등 전시 작품들

 

 

 

 

 

 

 

 

 

 

 

▲오베르의 정원

 

 

▲화가가 그림에 사용했던 색, 그 색채의 표현에 사용되는 향기들

 

 

 

▲라일락, 바다

 

▲자몽

 

▲전시회장에 비치된 향수들

 

 

▲가셰 박사의 초상, 까마귀가 있는 밀밭

 

▲트랭크타유 다리

 

2023년 1월 3일부터 1월 29일까지

공주 시내 여섯 군데 갤러리에서 고흐 展이 열리는 현장을 모두 둘러볼 수 있었다.

공주 시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곳곳의 갤러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이번 행사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봉황동 반죽동 중동 교동  등에 갤러리가 잘 조성되어서 이런 작품전을 열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가는 곳마다 형장에서 자세히 해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다행이었다.

미술사나 서양의 화가게 대한 기초 지식이 없을 뿐 아니라 수채화나 유화에 대한 문외한이라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무엇 하나라도 보고 느끼고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체험하기 위함이었으며

시내 구도심을 걸을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자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뜻깊은 경험이었고 전시회를 돌아보고 알게 된 것들과 알고 싶은 것들을 그냥 말 수 없어서 적는다.

혹 잘못 알고 있는 것이나 의문 점에 대한 해답을 주실 분께서는 댓글을 달아주시면 좋을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sn Gogh)  

 

1853330~1890729(37)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 오베르 쉬르우아즈에서 죽음

일생을 가난 속에서 동생의 도움을 받았고 독신으로 삶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린 네덜란드 후기인상주의 화가

주요 작품: 감자를 먹는 사람,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27세에 그림 시작하여 주요 작품이 모두 10년 간에 만들어짐

고갱의 그림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고갱과 결별

정신병 발작으로 자신의 왼쪽 귀 잘라

고흐의 죽음의 충격으로 4살 밑 동생 테오도 정신병이 생겨 형이 죽은 지 6개월 후인 189134세 나이로 죽었다.

생전에 <아를의 붉은 포도밭> 이 한 점만 400프랑에 팔렸다.

사후에 빨리 인정받았다.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다.  

고흐가 화가가 된 것은 자신이 존경하던 화가의 그림을 보고 그것을 모사하면서 기교를 익혔기 때문이다.

밀레의 그림 소재는 자연, 그리고 자연 속의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본 유키요에에서도 일본적 스타일 받아들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주요 작품일람

 

전기(1885년 이전), 감자 먹는 사람들

 

파리 시절( 1886~1888), 탕기 영감의 초상화

아를 시절(18882~1889년 5월), 노란 집, 밤의 카페테라스, 자화상, 반 고흐의 의자, 집배원 조제프 롤랭의 초상, 해바라기

생레미 시절(18895~1890년 5월), 별이 빛나는 밤, 사이프러스 나무와 별이 있는 길, 자화상, 아를의 여자,

오베르쉬르우아즈 시절(1890년 5월~7월) 도비니의 뜰, 가세 의사의 초상, 오베르의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

 

1. 네덜란드와 프랑스

왜 다른 나라도 아닌 프랑스로 갔나?

2. 형제간의 편지

네 살 밑의 동생과 왜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동생의 신세만 졌나?

3. 공주의 갤러리 6곳에 일제히 고흐의 작품을 전시한 의미는 무엇이며 가는 곳마다 관람자 수가 없거나 한두 명뿐이었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나?

 

 

2023년 1월 13일

'고흐, 향기를 만나다'라는 같은 주제로

1월 29일까지 공주 시내 6곳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는 짧은 생애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 고흐의 특별한 이야기와 그림을 소개하고

조향사(調香師)가 그림에서 영감 받아 만든 향수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오늘은 이미정 갤러리를 찾아보았다.

이미정 갤러리는 충청남도 공주시 감영길 `12-1에 주소를 둔 갤러리로

제민천 대통교와 충청도포정사 문루 중간 도로변 2층에 있다.

 

이미정 갤러리 관장은 전시회 관람자를 위하여 친절히 안내하고 있었다.

오늘 둘러본 전시장의 모습을 기록한다.

이곳의 주제는 '아를에서'다

빈센트는 프랑스의 남쪽 지방 아를에서

활짝 핀 꽃과 생명력 가득한 자연을 그리며 물감을 두텁게 칠해서 입체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임파스토 기법을 완성시켜가고 있었다.

▲공주 이미정갤러리에 붙은 고흐 전 안내판

 

▲추수 풍경

 

▲프로방스의 농가

 

▲아를 근처의 좁은 길

 

▲꽃이 피는 복숭아 나무

 

▲노란집

 

▲프랑스 소설책과 장미가 있는 정물화

 

▲반 고흐의 침실

 

▲세탁부 여성들과 루빈 뒤 로이 운하

 

▲아를의 트랭크타유 다리

 

 

▲밤의 카페테라스

 

 

▲아를의 붉은 포도밭

 

 

 

▲해바라기

 

 

▲룰랭의 부인

 

▲해바라기

 

 

2023년 1월 13일

충청남도 공주시 대통 1길 50에 주소를 둔

대통길 작은 미술관을 처음 가 보있다.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데 공주문화원과 중학동행정복지센터 사이에 있는 작은 갤러리다.

이미정 갤러리에서 도로 건너 문화원 가는 도로변에 있는데 아담하게 잘 꾸며진 전시장으로 2층 구조다.

이고의 타이틀은'파리로 향하다'이다.

한동안 농민들의 생활과 농촌의 풍경을 기리던 빈센트는 파리로 향하게 된다.

파리에는 인상파 화가들이 있어서 그곳에서 카미유피사로, 조루주 쇠라의 작품 등으로 인상주의를 접하며

빠른 속도로 화풍과 색채를 흡수하여 자신의 작품에 녹아내기 시작한다.

▲중학동 행정복지센터 앞 큰 도로에서 북쪽으로 20m라는 안내판

 

▲생 피에르 광장 정원의 연인

 

▲해바라기가 있는 헛간

 

▲테오아파트에서 바라본 풍경

 

▲물랭 드 라 갈레트 뒤의 몽마르트

 

▲물랭 드 라 갈레트

 

▲몽마르뜨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자포니즘은

서양에 전파된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한 현상을 말하는데

그것은 1860년대부터이며 당시 활동하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데

인상주의 대표 화가인 모네는 일본 전통 의상이나 물건을 작품 소재로 사용하였고

빈센트도 자포니즘의 매력에 뻐지며 작품을 모사하기도 하였다.

 

 

 

탕기 영감의 초상화

탕기 영감은 프랑스파리에서 활동한 화상(畵商)으로 프랑스 젊은 화가들에게

그림을 받고 물감과 재료를 제공하는 든든한 후원가였다.

빈센트의 유화를 저음으로 전시해 준 화상이자 친구였다.

동생 테오의 소개로 만난 탱기 영감 초상화 3점을 그렸는데 

탱기 영감의 소박한 느낌과 선량함이 나타나 있다.

빈센트는 밀레뿐 아니라 일본 화가의 그림도 모사(模寫)했다.

▲코르티잔(케이사이아이센 모사)

 

▲7월 14일 기념 행사, 파리

 

▲수레국화와 양귀비가 있는 화병

 

▲유리컵에 꽂힌 아몬드꽃

 

▲유리잔 안의 꽃 피는 아몬드 나뭇가지와 책

 

▲오렌지와 레몬, 파란 장갑이 있는 정물화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

 

▲밀짚 모자를 쓴 자화상

 

▲회색 벨트 모자를 쓴 자화상

 

 

▲대통길 작은 미술관 전시실

 

 

2023년 1월 13일

 

'고흐, 향기를 만나다' 展을 보았다.

고흐의 작품을 공주 시내 6곳 갤러리에서 동시 전시하는데 그중 갤러리 쉬갈에서의 작품전이다.

 

갤러리 쉬갈은

충남 공주시 봉황로 84의 카페 서천상회와 같이 있다.

부근에 나태주 풀꽃문학관, 공주사대부설중고, 충청도포정사, 공주세무서 등이 가까이 있는 곳이다.

입구에 붙은 고흐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공주시 봉황로 84 갤러리 쉬갈 입구

 

갤러리 쉬갈의 전시 타이틀이 '화가가 되는 길'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생으로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 프랑스에서 죽었으니

37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는데 고독과 가난 속에 독신으로 살았다.

화가가 되기 전까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27세부터 화가가 되었는데 죽기 10년 전이다.

10년 동안에 2천 여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900여 점이 유화이고 1천 점 이상이 드로잉과 스케치란다.

 

 

고흐는 밀레(1814~1875)의 그림을 진정한 그림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그림을 모사하는데 힘썼다.

 

갤러리 쉬갈에 전시된 작품들이다.

처음에 웬 밀레 작품이지 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고흐는 밀레를 흠모하여 그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화가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보다. 모방이 창조니까.

 

 

감자 먹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반 고흐 최초의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갤러리 쉬갈에 전시된 작품들

 

▲가을풍경

 

 

▲밀레의 그림과 고흐의그림

 

▲감자를 심는 여자와 쟁기꾼

 

▲감자 먹는 사람들

 

▲낮잠(밀레와 고흐)

 

▲밀레의 농부들, 고흐의 두 명의 농부

 

▲성경이 있는 정물

 

▲씨뿌리는 사람(밀레, 고흐)

 

▲자화상

 

▲자화상

 

▲장미와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화

 

▲첫 걸음마(밀레,고흐)

 

▲해바라기

1월 29일까지 고흐 전은 이어진다.

▲안내 팸플릿

 

▲민 갤러리, 고흐 전 안내판. 옥룡동이 아니고 중동 작은 사거리 부근임

 

민갤러리의 주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로 154-4, 2층이다.

1층이 제일화방이고 층계를 올라가야 민 갤러리다.

공주중동초등학교 부근이다.

농협공주시지부 건너편에서 중동 작은 사거리 부근으로 내려가가다 오른쪽 좀 안쪽에 있다.

▲전시회 안내판

'고흐, 향기를 만나다 展" 이 여섯 곳의 공주시내 갤러리에서 1월 29일까지 열리는데

그중 '생레미까지'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곳 민 갤러리 전시장이다.

 

전시장 민 관장님의 친절한 해설은 관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바쁜 가운데 시간 내어 해설해 준 광장님의 성의에 감사한다.

▲폴 고갱이 빈센트에게 선물한 그림.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1848~1903)은 고흐보다 5년 전에 태어나 13년 후에 죽은 20세기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화가인데 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에서 고흐와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고.

▲아를의 지누 부인 초상화

 

이번 전시를 통해서 화가 고흐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배웠는데 여섯 곳의 갤러리에서 만난 그의 그림과 장소와 사람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 등이 궁금하여 검색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고흐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생래미는 고흐가 죽기 전까지 머물렀던 요양원이 있는 도시라는 것, 거기서 병마와 싸우면서도 명작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를에서 지내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전신착란증으로 입원한 정신병원은 생레미 드 프로방스의 생폴 드 모졸 이라는 이름도 긴 수도원이었다는데 지금도 고흐가 지내던 방 내부와 그림을 그리던 정원을 공개하고 있다고.

※아마 고갱과 같이 지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나 왼쪽 귀를 스스로 잘랐다는데 정신분열증과 함께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음

▲빈센트는 그의 동생 테오의 도움이 컸다.

 

▲입원 병원의 현관

 

▲생폴 병원 간병인의 초상

 

▲사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

 

▲생폴 병원 정원의 나무들

 

▲생레미 도로의 여인

 

▲아이리스

 

1889년부터 1890년 5월까지 약 1년간 이 병원에 서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식을 줄 몰랐다고 한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론강 위 별이 빛나는 밤

 

▲별이 빛나는 밤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화

 

 

▲꽃 피는 아몬드 나무
▲해바라기

 

▲여러 가지 향수

남들의 오해와 무시 그리고 비난으로 빈센트는 고뇌에 찬 짧은 일생을 보냈지만, 그가 남긴 그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빈센트로만 기억하지 말고 그의 그림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하는 그의 위대한 작품 세계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 보자. 그리고 그를 이해하자.

 

공주에서 이런 전시회가 열리게 된 것은 공주문화재단의 노력이라 생각한다.

공주에 미술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인 갤러리가 여섯 곳 말고도 더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이번 전시회의 장소나 안내하는 분들의 친절과 자상함에 더욱 고마움을 느낀다. 과연 공주는 문화도시이다.

앞으로 더 좋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시민에게 더 많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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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공유전시 프로젝트 '고흐, 향기를 만나다' 展은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 고흐의 특별한 이야기와 그림을 소개하고

조향사(調香師)가 그림에서 영감 받아 만든 향수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전시라고 팸플릿에 썼다.

 

공주 겨울 아트쇼의 한 과정으로

'고흐 향기를 만나다' 전(展)이 공주 시내 여섯 군데 갤러리에서

2023년 1월 3일부터 1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오늘은 첫 번째 전시장인 갤러리 수리취(공주시 효심 1길 7)를 찾았다.

공주봉황초등학교 부근에 있는 갤러리다.

주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효심 1길 7

 

여기서 전시된 작품은 주로 편지이다.

타이틀이 '편지: 빈센트로부터'

빈센트의 예술을 완성하는 것은 현재의 편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생 테오와의 서신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라고 팸플릿에 적었다.

수많은 편지 중에서도 빈센트가 테오의 헌신이 안타깝고 자신의 예술에 내린 확신과 의지가 떨어져 갈 때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먼저 이곳 갤러리 수리치가 생소하였는데

바깥에서부터 일반 가정집처럼 정감 넘치는 아기자기한 작은 갤러리다.

▲공주 수리치 갤러리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수리치 갤러리를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전시된 편지들이다.

글씨가 작은데 원어로 적은 편지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이다.

빈센트가 남동생 테오(Theo)와 주고받았던 수많은 편지들을 보면 고흐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지금부터 133년 전

빈곤한 청년 화가 고흐의 예술과 삶을 고찰해 보게 한다.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

불꽃같은 열정과 격렬한 필치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했으며

서양미술사 상 위대한 화가로 꼽힌다.

1853년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1890년 자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37년의 짧은 생애동안 지독한 가난과 고독했던 고흐는 그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의 도움을 받았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19세기 후반 네덜란드 쥔데르트에서 출생하였다.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자화상(Mirror-image self portrait)>과 <해바라기 연작([Sunflowers)>(1880), <별이 빛나는 밤에(La Nuit Étoilée)>(1889) 등이 있다. 네덜란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과 프랑스를 떠돌면서 책방 점원과 선교사 등을 지냈다. 1880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천직임을 깨닫고 습작에 열중했다. 네덜란드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한 후 프랑스에서 인상파 화가들을 만나면서 그의 독특한 붓놀림으로 자연의 형태와 색채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개성적인 화풍이 확립되었다. 그는 현대회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https://cafe.daum.net/201s/AYJ5/7111?q=%EB%B9%88%EC%84%BC%ED%8A%B8+%EB%B0%98+%EA%B3%A0%ED%9D%90+%ED%8E%B8%EC%A7%80&re=1 

 

 

자신을 사랑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귀를 자른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r)〉, 1889년, 캔버스에 유채, 51×45cm, 개인 소장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19세기 후반 네덜란드 쥔데르트에서 출생 하였다. 네덜

cafe.daum.net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을 위하여 옮겨 적은 편지 문서를 첨부한다.

빈센트 편지(230114).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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