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7일, 공주시 교육삼락회 노인자원봉사단(단장 최창석) 회원 20명은 오늘 6월 1차 봉사활동을 벌였다.
반죽동과 교동 사이의 고갯길(일명 하고개)을 중심으로 주변거리의 쓰레기 줍기 활동을 벌였는데 더운 날씨에 땀 흘려 봉사하는 모습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노란 복장에 노란 모자를 쓴 70대 후반부터 80대를 넘는 고령에도 노인봉사의 큰 뜻을 생각하여 최고령인 90세이신 유*열(전 공주교육장) 님도 동참하시어 격려해 주셨고 최창석 단장은 모든 회원의 활동을 앞장서서 솔선수범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거리에서 가장 줍기 힘든 것은 담배꽃초였다. 아무 데나 버린 쓰레기는 지구를 오염시키므로 내 주변부터 깨끗한 환경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윤대영 교수의 강의 제목 '인문학으로 보는 세계유산'의 세 번째 강의로 베트남 호이안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후 2시 시작인데 장*수 선생님 덕분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진묘수가 기다리는 공주박물관 앞입니다.
▲국립공주박물관에
1. 아시아 역사 속의 베트남, 그리고 호이 안
1) 주요 연표
기원전 111, 한 무제, 남 비엣(南越) 정부-북속(北屬) 시기-응오 씨 왕조-딘 왕조-띠엔 레 왕조-리 왕조- 쩐 왕조를 거쳐 응우엔 왕족까지 나열되어 있음
BC 200년경 세워진 남베트 독립왕국은 중국에 2차 정복되었다가 물리치고 양분되었다가 1802년 통일되었다. 프랑스 식민지로, 프랑스 속령으로 지배를 받았다. 1945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프랑스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렀고 1954년 승리했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소련이 지원하는 북부와 미국이 지원하는 남부로 분할되었다. 그 후 남북의 베트남 전쟁 휴전 이후 1973년 미군이 철수했으나 1975년 북베트남의 공격으로 남베트남 정부는 붕괴되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합되었다. (다음 백과 참조)
2) 베트남의 남진(南進)과 영토의 확장
남띠엔(남진)은 11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베트남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한 일을 말한다. 현재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연안의 전역을 영토로 하고 있다. 11세기 이후 각 왕조는 모두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시켰다. 베트남의 역대 남진 정책은 모두 700년에 걸쳐 진행되어 처음보다 3배나 확장되었다.
베트남의 동쪽을 동해로 부르고 중국에서는 남중국해라고 부른다는데 왜 그리 동안(東岸)으로만 긴 나라가 됐냐면 서쪽의 산악지역 보다 확장하기 쉬웠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호이 안 시는 베트남 중부 꽝 남 성의 도시이고, 다 낭 시로부터 30km 떨어졌고 투 본 강의 하구에 위치하는 오랜 항구 도시다. 인구는 약 12만 명(공주시 인구는 102,747명)이다. 음식으로는 까오러우, 따오퍼, 껌가호이안 등이 유명하다. 모두 나는 한 번도 안 먹어 본 생소한 이름이다. 쌀국수 이야기만 들었는데 그것도)
까우러우~돼지고기, 향채, 숙주, 허브 등이 첨가된 쌀국수
2. 호이 안의 전사(前史), 참파(Champa, 192~1832)
1) 해양국가
1306년 당시의 참파~북쪽의 베트남, 북서쪽의 라오스, 서쪽의 앙코르 왕국
참파인의 해상교역 전통
-고원 지대에서 생산되는 상아, 코뿔소 뿔, 침향, 보석 등은 주요 수출 품목
-(7~10세기) 향료 무역
2) 15세기 후반부터 쇠퇴
15세기 후반 베트남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16세기에 참파 활동무대가 남쪽으로 이동
북쪽에서 내려온 용우엔씨가 꽝남 정권 수립~이때부터 호이 안은 외항으로 발전
3. 중부 베트남의 교역도시 호이 안(會安)의 발전
1) 배경
-참파의 해상 무역 전통 계승, 교역의 시대에 호이 안 번영
호이 안은 당시 용우엔씨의 대외 무역항으로 서구나 중국, 일본 및 동남아 각지 상인이 모여듦
꾸라오 짬 섬 근처에서 난파선 발굴
16세기말 이후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중국인, 일본인이 내항하여 국제 무역항으로 번영함
2) 서구의 상인과 선교사
-1498년부터 바스코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 이후 대거 아시아로 진출함, 1511년부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차례로 동남아시아에 들어옴
3) 중국~명나라의 해금정책 해제로 1567년부터 중국의 남해 무역이 자유로워져서 베트남으로 오기 시작
4) 일본~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朱印船(주인선) 제도의 창설로 일본인 거리 형성
(주인선(朱印船)~붉은 글씨로 된 통상 허가증(주인장)을 발급받아 무역 허가를 받은 일본 배)
來遠橋(내원교-일본교)-폭 3m 길이 18m, 중국풍 지붕의 부교로 안에 절 있음, 1593년 일본인이 건설
주인선 무역이 왕성한 17세기 경에는 일본인 마을이 있었고 300명 이상 일본인 거주함
5) 한국
호이안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각별함
1687년 추자도에서 풍랑 맞은 배가 표류, 호이안에 체류 후 수개월 후 중국 상선으로 조선으로 귀국
관공사(關公寺)-관제묘(중국인 거리에 있는 관우 모신 곳)
그들이 느낀 호이안의 이미지-누에 5회 쌀 수확 3번, 주식 걱정 없음,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염려 없음, 아름다운 단청 입힌 누각이 화려, 진기한 새와 이상한 동물 집집마다 길러, 기이한 꽃과 보화가 곳곳에.
6) 쇠퇴~1630년 도쿠가와막부가 쇄국령 반포로 일본과의 무역 중단으로 일본인들은 유럽 상인의 통역 겸 중개자로 전락. 17세기 후반 천계령 발표로 연해 주민들이 해안 접근 못함, 연해 주민 내륙으로 보내 방어 시설 건설 노역 시킴. 교역에 부정적인 영향 끼침
중국인 거리의 화교 회관~복건회관(1773년 건설 화교회관), 광동회관(1786년 창건 광동계 중국인 회관), 1770년대 떠이썬 운동으로 도시 파괴 후 재건하여 19세기까지 이름, 떠이썬 정권은 해외 무역 반대, 1802년 프랑스인들에게 다낭 항구에서 독점 무역권 허가,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번영은 다낭 항으로 옮겨짐
4. 현재의 호이 안
15~19세기의 동남아 교역항 유산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알려져 있음
1) 참파의 흔적
구시가와 꾸라우짬 섬은 2009년 유네스코의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됨
2) 중국의 흔적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원래는 화교들이 관세음보살을 모시던 사원), 무역 도자 박물관, 중국인 거리를 중심으로 오랜 건축물이 남아 있고,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3) 일본의 흔적
호이안의 교외에는 1647년에 죽은 곡미차랑 병위란 이름이 새겨진 일본인 묘지(1930년 일본인이 복원)
4)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흔적
중앙시장, 판보이쩌우 거리의 식당, 살롱
▲국립공주박물관 인문학 강좌 3강 내용 중 하나
꼭 가보라는 강사님의 권유와 함께 보여준 사진임
▲국립공주박물관 인문학 강좌 3강 강의 후 베트남에 대한 보충 설명하는 수강생
베트남은 우리나라와는 많은 인연이 있는 나라이고, 관광지가 많은 걸로 들었는데 유독 이곳 호이안에 대하여 주제를 삼았는지 궁금하고 역사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관광 자원의 사진과 곁들인 설명이었으면 더 솔깃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박물관에서의 인문학 강의에 임한 여러 수강생들의 열정과 강의에 많은 준비와 성의를 보여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제5기 공주박물관대학 인문학 강좌 '인문학으로 보는 세계유산' 두 번째 시간으로 김혜진 교수 시간으로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라는 주제의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박물관 대강당을 메운 수강생들이 조용한 가운데 강사의 강의를 열심히 듣는 모습이 매우 학구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강사는 화면으로도 소개되었는데 소상한 소개 내용을 다 적을 수 없어서 사진으로 대체한다.
이날 진행된 강의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으로 담아서 복습하는 것이 나에게는 유리할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허용치 않아서 기억을 더듬거나 강의 자료집을 보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해의 질이 떨어진다.
김혜진 한국외국어대학 교수는 아테테대학교 고고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니 이 방면의 선구자인 것 같다.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
1. 그리스 문화유산의 역사
그리스문화유산은 현재 그리스 영토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프랑스와 스페인 남부, 이집트 북부, 키프로스, 터키 서안과 흑해 연안까지 확장되어 있다니 리스인들의 활동 영역은 에게해를 중심으로 지중해와 흑해까지 식민지를 건설했던 오랜 역사 때문인 것으로 본다.
고대 그리스에는 유명한 성소로 올림피아, 델피, 델로스, 네메아, 이스트미아 등이 있었는데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로 넘쳐났다.
관광산업에 대한 그리스 정부의 관심은 고조되어 1960대부터 고유의 음식과 전통문화를 지닌 그리스의 섬과 시골까지도 그리스의 문화유산을 비롯한 자연경관을 찾는 관광객은 2015년만 해도 그리스 인구의 배가 넘는 2천만 명이 넘었다.
그리스 정부의 국가전문화 상품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2. 그리스 문화유산 가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지중해 지역 여러 나라 정부와 민간의 관심은 요즈음 더 높아졌다.
그만큼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관광 사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홍보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세계유산으로 지정 돠는 것이 국제적인 홍보 효과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의 역사적 토대 위의 문화유산의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각국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그와 관련된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홍보하는 일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3.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
아테네는 서양문명의 본고장이다.
이 자랑스러운 도시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아크로폴리스와 그곳에 지어진 아테나 여신의 신전인 파르테논이다.
유네스코 엠블런으로도 지정될 정도로 세계유산을 상징하는 조형물이기도 한 이 건축물은 그리스 문화유산 가운데 단연 가장 먼저 꼽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시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아레오파고스, 아고라, 프닉스 등의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것은 서구문화의 정수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아테네라는 이름은 도시의 수호여신 아테나에서 온 것이다.
아크로폴리스~그리스어로 '높은'을 뜻하는 아크로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가 합쳐져서 생긴 표현이다. 높은 언덕에 있어서 시내 전역에서 볼 수 있고 파르테논 신전 등이 있다.
강의 내용에 쓰인 화면의 하나이다.
4. 나가는 말:아크로폴리스 박물관과 문하재 반환운동
파르테논 전시실의 특징 세 가지
하나, 복제본을 같이 전시한다는 사실
둘, 조명과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이 어우러지는 전시공간의 구성
셋, 문화재의 전시 공간과 위치 등을 보아 문화재 반환의 필요성을 관람자가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