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2일 일요일
▲공주 송산리고분군 조감도
오늘은 일요일인데 오후 늦게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송산리고분군을 탐방했다.
공주에는 공산성과 이곳 송산리고분군이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려져서 얼마나 영광인지 모른다.
지난 7월에 세계유산이 되었는데 공주 시민으로서 이제야 송산리고분군을 보러 오다니 좀 그렇지만, 일요일 오후 4시에
관광객이 뜸한 시간에 와서 혼자 보니 나름대로 홀가분한 느낌으로 볼 수 있었다.
송산리고분군은 공산성과 같이 우리 공주시의 대표 관광지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전부터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관광지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곳을 잘 보존하고 후손에게 영원히 남겨줄 유산이라는 점에서 이곳을 찾는 이를 위한 주차 시설이나 화장실, 휴게소, 관광 통로 등 최선을 다해 마련하고 있다.
주차장에 내리면 모든 관광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화장실이다.
송산리고분군의 화장실은 다른 곳보다 잘 관리되고 있어서 사용하는 사람 모두가 깨끗하게 사용하는 것 같았다.
고분군 가는 길에서 본 공주시의 상징과 마스코트 그리고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국보급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구조물을 보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 |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국보 제156호, 157호(무령왕과 왕비의 금제 귀걸이) |
▲백제의 고도, 공주시 마스코트(고마곰과 공주) | ▲공주시의 슬로건, 흥미진진 공주 |
▲국보 제154호, 왕 금제관식 | ▲국보 제155호, 왕비 금제관식 |
송사리 고분군에 대한 자세한 해설판이 서 있어서 시간을 내어 읽어 보았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에 대한 안내판
공주시 웅진동과 금성동의 송산(松山)에 있는 웅진 백제 시대(475년~538년)의 왕과 왕족의 무덤이며 원래 17기였는데 현재는 무령왕릉과 6기로 모두 7기의 무덤이 있다.
무덤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횡혈식석실분)과 벽돌무덤(塼築墳 전축분)으로 구분되는데
1~5호분은 굴식돌방무덤이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이라는 이야기다.
송산리고분군에는 웅진백제역사관이 있다.
발굴된 고분의 무덤에 실제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웅진 백제의 역사자료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쉽게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민 장소가
바로 이 웅진백제역사관이다.
이곳을 보려 했더니 마침 12월 말일까지는 내부를 더 좋게 고쳐 만드는 공사를 하므로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더 좋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웅진백제역사관은 12월 31일까지 공사 중 | ▲입장시간의 제한 | ▲길 안내 |
송산리고분군의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전국의 관광객들이 알아야 할 점이다.
친절하게도 고분군을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안내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고 왼편에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로 가는 길은 낙엽 지는 가을이지만,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물론 관광객들의 수준 높은 문화의식 덕분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송산리고분군 매표소
매표소는 입장료를 내는 곳이니 입장료에 대한 내용을 소상히 아는 것도 하나의 정보다.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의 무료입장할 수 있는 사람은 단체 인솔자, 공주 시민, 공주 온누리시민, 65세 이상,
입장료는 어른 1,500원(단체:1,400원), 청소년 1,000원(단체:900원), 어린이 700원(단체:600원). 카드결제 가능하며 단체는 20인 이상. 휴관일은 설날 및 추석 당일
일요일의 오후 4시 57분, 입장객이 나 하나다. 나는 공주시민이며 온누리 공주시민이며 65세 이상이다.
매표소 안에 붙은 그림을 보니 이곳의 걷기 코스를 안내한 것 같다.
왕릉의 위치와 짧고 긴 걷기 코스를 판단하여 걸으면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송산리고분군 둘러보기(걷기 코스)
1코스는 고분군 안을 걷는 짧은 코스이며 2코스는 정지산유적지와 박물관 옆을 지나 선화당과 한옥마을과 공예품전시관을 돌아오는 긴 코스이다.
매표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관이 있다.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관
더 가까이 가본 모습이다.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관 입구
늦은 시간이라 들어가는 사람 나오는 사람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관람 에티켓 |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관 내부 |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관을 들어서니 관람 에티켓이 쓰여있다. 문화시민은 스스로 잘 지켜서 앞으로 이런 안내판이 사라져야 할 것 같다.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광경이다. 송산리고분군의 모든 것을 볼 호기심에 샅샅이 둘러보았다.
이 안에 공주시 문화해설사 안내판이 붙어있다.
아마 이곳 내용을 자세히 설명을 듣고 싶으면 참고하라는 것 같다.
▲공주시 문화관광 해설 안내
공주의 무령왕릉, 공산성, 석장리의 관광해설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안내이다.
그러면 안으로 더 들어가서 웅진 시대의 시작과 송산리고분군 그리고 송산리고분군의 발굴과정을 설명한 것을 본다.
▲웅진 시대의 시작과 송산리고분군 | ▲송산리고분군 발굴 과정 |
송산리고분군은 사적 13호이다. 웅진 시대는 문주왕부터 성왕까지 5대 64년간을 말하는데 송산(松山)에 왕과 왕족의 무덤이 7기가 있다.
무령왕릉을 중심으로 동북쪽에 1~4호분이, 무령왕릉 아래쪽에 5~6호분이 있다.
무령왕릉이 발견된 후로 이곳이 웅진 시대의 왕과 왕족의 무덤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는 내용이다.
송산리고분군의 발굴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4호분과 5호분은 굴식돌방무덤이며 1~4호분은 1927년에 5호분은 1932년에 발굴되었는데 도굴로 인해 유물이 거의 없으며
6호분은 사신도로 유명하며 벽돌무덤으로 규모가 무령왕릉과 필적할 정도라 한다.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1971년 장마철에 5호분과 6호분의 습기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굴되었다고 한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108종 4,600여 점으로 학술 가치가 매우 높으며 묘지에서 나온 묘지석으로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왕릉이라는 점에서
국내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5호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송산리 5호분 모형 | ▲송산리 5호분 해설 | ▲송산리 5호분의 내부 모형 |
송산리고분군의 모형전시관의 무덤은 실제와 같게 잘 꾸며졌는데 모형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매우 낮아서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5호분은 굴식돌방무덤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그 전문적인 내용은 연구할 일이다. 다만, 이 무덤도 도굴되었으며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는 무덤이다.
다음은 백제 고분의 종류를 설명한 것을 본다.
▲백제 고분의 종류
백제의 고분을 크게 나누어보면, 널무덤(토광묘)과 독무덤(옹관묘), 돌무지무덤(적석총), 돌덧널무덤(석관묘), 돌방무덤(석실분), 벽돌무덤(전축분) 등 여러 종류가 있다는 내용이다. 무덤의 형식도 변하고 그 종류도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6호분에 대하여 알아본다.
▲6호분의 해설
6호분의 가장 큰 특징은 벽돌무덤으로 고구려와 같이 사신도가 있다는 점이다.
6호분은 네 벽에 사신도가 그려져 있어 송산리 벽화 고분이라고도 한다.
동벽에는 청룡(靑龍), 서벽에는 백호(白虎), 남벽에는 주작(朱雀), 북면에는 현무(玄武)를 그렸고 남벽의 주작 좌우에는 해와 달, 구름을 묘사했다.
이 6호분의 사신도는 웅진 시대 유일한 벽화이자 부여 능산리 동하충 벽화와 함께 백제 대표적인 고분 벽화이다.
▲송산리고분군 6호분의 사신도 설명 | ▲송산리고분군의 사신도, 서백호(西白虎) | ▲송산리고분군 사신도, 동청룡과 서백호 | ▲송산리고분군 사신도, 남청룡과 북현무 |
6호분의 사신도를 바탕으로 하여 공산성 성곽 길에 걸린 깃발이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깃발 테두리 색깔이 다르다.
다음은 무령왕릉을 자세히 본다.
▲무령왕과 무령왕릉 발견의 의의
무령왕은 백제 25대 왕으로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서양 문물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서 국가의 대외적 발전을 꾀했다.
이렇듯 백제는 무령왕의 뛰어난 통치력을 바탕으로 고대 동아시아에서 그 위상을 높인 나라였다.
무령왕릉이 발굴되기 전에는 백제의 역사와 문화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무령왕릉이 발견되므로 무령왕릉 자체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 안에 부장되어 있던 다양한 유물 하나하나가 백제의 정신이자 그 문화의 진수 자체로 나타났다.
이로써 백제 장인들의 예술적 감각과 높은 금속 기술을 알 수 있고 무덤 속의 묘지석을 통해 무령왕이라는 것과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기에 한국 고대사와
동아시아의 역사를 아는 지표가 된 것이다.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의 그 구조
▲살아있는 무령왕릉 | ▲무령왕릉 묘지석 | ▲무령왕 무덤 내부 | ▲무령왕릉 축조에 사용된 벽돌 |
무령왕릉이 발견되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무덤 속의 지석이었다.
지석(誌石)은 두 개인데, 왕의 지석에는 묘지와 방위도가, 왕비의 지석에는 묘지와 매지문(買地文)이 새겨져 있다.
지석의 내용은 왕과 왕비가 세상을 뜬 날짜와 장례 절차에 관한 것이며 땅의 신들에게 땅을 사들인다는 매지문이 있는 것은 왕비의 지석이다.
다음은 무령왕릉 출토 유물의 일부 사진이다.
▲무령왕 금제관식, 금귀고리, 금제뒤꽂이 | ▲무령왕비의 장신구 | ▲무령왕의 허리띠 장식을 비롯한 유물 | ▲왕비 나무머리받침과 왕의 나무머리받침 |
고분군모형전시관을 나오면서 웅진 백제의 찬란했던 무령왕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은 무령왕릉을 고스란히 원형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자는 점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무령왕릉 발굴의 진정한 가치를 실감했다.
이제 왕릉이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고분군이 있는 언덕은 모형전시관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몇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맨 처음 만나는 무덤이 6호분이다.
▲송산리고분군의 6호분
▲송산리 6호분
송산리 6호분에서 바로 위쪽에 있는 무덤이 송산리 5호분이다.
▲송산리 5호분의 모습
▲송산리 5호분의 해설
무령왕릉은 송산리 5호분 옆에 있다.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송산리 5호분과 1~4호분 중간에 있다.
▲무령왕릉
무령왕릉에서 왕과 왕비의 금제 관식을 비롯하여 총 108종 4,6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송산리 1~4호분은 무령왕릉 바로 위쪽에 있다.
▲송산리 1~4호분
▲송산리 1~4호분의 해설문
송산리 1~4호분 위 정상 부분에는 송산리 방단계단형 적석유구가 있다.
▲송산리 방단계단형 적석 유구
어려운 전문 용어라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날이 저물어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서 보니 왕릉 길이 참으로 깨끗해 보였다.
▲깨끗한 왕릉 길
정문으로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벌써 5시 30분이다.
오늘, 백제 역사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세계유산의 도시 공주, 1,500년 전 백제로 빠져 들은 오후였다.
※송산리고분군 주소; 공주시 왕릉로 37-2(웅진동)
※무령왕릉관광안내소; 전화는 041-856-315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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