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국고개에 담긴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온다.
효자 이복 이야기이다.
옥룡동 주민센터 부근에 서있는 효자비에는 효자비를 세운 내력이 씌어 있다.
어른께 드리려고 얻어오는 국 그릇이 엎어지는 안타까운 사연이 담긴 극고개
그 내용을 돌에 새겨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충남역사박물관 주차장의 한쪽 벽을 살펴보자.
공주시 옥룡동 산7 번지에 서 있는 효자 이복 비
옛날 공주 옥룡동에는 비선거리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비석이 죽 늘어져 있었답니다. 비석들 중 아주 아주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는데, 이른 바 이복의 효행을 기리는 비랍니다. 시대는 고려때, 이 비선거리 마을에 어린 나이에 아비를 여의고 살아가는 소년 이복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미는 장님이었답니다. 그래서 어려서 부터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하고 그 품삯으로 음식을 얻어 눈 먼 어미를 봉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바람이 몹시 불고 아주 추운 겨울의 어느날, 여느 때처럼 밥과 국을 얻어가지 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러 집으로 가는데 길을 걷다가 그만 미끄러져 며칠을 굶주린 소년은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 가져다 드릴 밥과 국을 땅에 쏟아져 버렸답니다. 효자 이복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통곡을 하였습니다. 집에 계신 굶주린 어머님 생각에 더욱더 서럽게 통곡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이복이 넘어진 그 자리를 갱경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후에 국고개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또 어느해 겨울에 앞을 못보시는 어머님이 병이 들게 되었답니다. 백방을 약을 구해 지극정성으로 써 보았으나, 차도가 없어 이복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동네사람들도 이복을 도우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 이복의 어머님의 병에는 잉어피가 효험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엄동설한에 이복은 잉어피를 구하여 금강변으로 나갔으나, 모두 얼음으로 뒤덮혀 있었습다. 먼저 천지신명께 잉어를 잡을 수 있게 제를 올리고 나서 빙판을 깨고 낚시를 드리우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신기하게도 큰 잉어가 잡혔습니다. 며칠 후 어머님의 병환이 씻은듯이 나았답니다. 동네 사람들 또한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복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게 되고 이복지리란 비석을 세우게끔 하였습니다. 현재는 옥룡동 양수장 중턱에 새비석과 더불어 구비석도 함께 보관되어 있습니다. (출처:http://kongjuw2.kongju-e.ac.kr/~kongju/iyagi_5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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