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북루에는 중수기 5 점과 시판 8 점이 걸려 있는데
그 내용을 감히 알 수 없어서 이리저리 알아보는 중에
박두원의 7언시에 대한 자료가 있어서 출처를 밝히고 여기 공유한다.
雙樹城開錦水頭 쌍수성 금강가에 세워지니
聞來從古是雄州 예로부터 큰 고을이라고 들렸네.
湖襟南裂通三道 물길은 남으로 갈라져 삼도로 통하고
山勢北馳拱一樓 산세는 북으로 달려 한 누각으로 향하네.
仰望奧情今惠政 깊은 정 이제 베푸는 정사를 원하노니
頻分華扁幾淸流 자주 나뉜 화려한 편액 얼마나 맑은 물 흘렸을 가
笙歌盡日憑誰得 생가(관악기) 종일토록 누가 누리며 보낼 수 있나
自願吾身鬼此遊 원하노니 내 몸 귀신이 되어도 여기서 노닐고 싶네.
[공북루에 대한 향토문화 백과사전의 글]
공북루(拱北樓)는 1602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유근이 공주 공산성에 감영을 설치하기 위해 절차를 계문하여, 1603년에 공주목사를 겸임하라는 비답이 내려지자 산성을 수축(修築)한 후에 옛 망북루의 자리에 세운 것이다.
공북루가 지어진 지 60년 후인 1663년(현종 4)에 오정위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중수를 하였고, 1765년 관찰사 윤동승(尹東昇)이 중수를 하였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중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1903년(고종 40)에 홍승헌이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중수하였고 「중수기문」을 남겼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도 한 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64년 국고 보조비로 보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728x90
'공주의기관(관공서,관광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주 구도심거리 (0) | 2021.01.17 |
---|---|
중동 147번지 (0) | 2021.01.13 |
공주 원도심 골목길 (0) | 2020.12.19 |
반죽교는우체국 다리 (0) | 2020.12.18 |
오늘도 걷다 (0) | 2020.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