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3일 화요일
한국불교사 (박영제 교수님)
박영제 교수님의 강의 내용 복습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시기 - 삼국의 국가체제가 정비될 무렵
고구려 - 제17대 소수림왕 2년(372)
소수림왕은 국가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해서 불교를 공인
백제 - 제15대 침류왕 1년(384)
신라 - 제23대 법흥왕 15년(528)순으로 공인됨
신라는 고구려 백제 보다 150 여년 늦게 공인됨
○ 불교의 역할
여러 부족의 신화와 무속신앙들을 포용하며 보다 한 단계 높은
종교와 철학체계로 이들을 규합.
부족적인 전통을 계승하면서 초부족적인 국가정신의 확립에 기여하여
고대왕국의 정신적 기반 마련
○ 한국불교의 성격과 기능
중국을 거쳐 한국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변모되어 국가적 성격을 강하게 가짐. 즉
국가목적에 봉사하는 종교로서 받아들여지고 정치와 불교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됨.
인도는 원칙적으로 정법을 근본으로 삼는 교주왕족의 입장(국가적 종교의 색채가 아님)
중국은 왕주 교종으로 변화
한국은 국가와 불교는 완전히 유착. 즉
한국의 불교는 왕법과 불법이 처음부터 일체시 되어 받아들여짐.
○ 고구려 불교
불교수입에 앞서 유교와 노장사상 받아드림. 고대국가의 성장을 일찍 보았음
불교와 왕법을 일체시하는 미신적 단계까지 빠져들지 않음.
삼국 중 가장 선진적이었으며 불교수입 이전에 국가성장을 이루었으며
폭넓은 교류로 문화수준도 높았다.
○ 백제불교
백제 또한 유교와 노장사상을 먼저 받아들였다. 중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국왕의 전제권력이 약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왕법에 대하여 불법의 독립성을 내 세움
○ 신라 불교 - 불교와 왕권과의 결합
신라는 삼국 중 문화수준이 가장 낮고 국가의 성장도도 제일 늦어서 불교를 받아들이며
국가체제 정비 및 왕권의 강화를 추진함.
불교도와 왕실은 밀착되어 상호이용의 관계를 가졌으며 왕실은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국왕을 부처와 동일시하였음.
23대 법흥왕부터 28대 진덕여왕까지 불교왕명시대라는 독특한 시대를 연출.
진흥왕은 삼맥이라 자신을 칭하고 만년에는 法雲이라는 이름으로 삭발 출가하였다. 이는
진흥왕의 정교 양면적 주제자로 군림하였음을 의미하였으며
진평왕대의 신라왕실은 바로 인도 카필라국(kapilaavastu)의 왕실을 그대로 모방함. 이는
진종설을 그대로 가져다 스스로의 골품을 불교적으로 성화시킴으로서 불교설화를 끌어다가
부족설화를 연장시키고 강화시키고 있었던 것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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