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1일 화요일
광도스님의 강의 내용을 정리 요약, 복습한다.
1. 관음정진
관음주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조사님의 말씀- 관음주송 하라
관음정진, 관음주송, 관음수행의 목적은 일심상청정 이루기 위함 - 성불(成佛)
대비주(大悲呪) - 신묘장구대다라니-힘 실려서 원하는 바 이룸
관세음보살 다섯 글자 소원 이룸 무궁무진한 법을 이루게 해
계율 지키는 전제하에 관음정진 해야.
마음 챙기는 일 먼저
십선계(十善戒)- 십선업도(十善業道)를 행하는 것을 계율로 삼은 것이다.
신업(身業) 1~3
① 불살생(不殺生):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
② 불투도(不偸盜):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③ 불사음(不邪淫):남녀의 도를 문란케 해서는 안 된다.
구업(口業) 4~7
④ 불망어(不妄語):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⑤ 불기어(不綺語):현란스러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⑥ 불악구(不惡口):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⑦ 불양설(不兩舌):이간질을 해서는 안 된다.
의업 (意業) 8~10
⑧ 불탐욕(不貪欲):탐욕스러운 짓을 해서는 안 된다.
⑨ 부진에(不瞋恚):화를 내서는 안 된다.
⑩ 불사견(不邪見):그릇된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이를 범하는 것을 십악(十惡)이라고 한다.
방석에 대하여
소중한 것-두 손으로 들어야, 밟지 않아야, 무릎 꿇고 앉아야, 손. 이마대는 곳 소중히
부처님 앉아계시는 연화대
앉아서 깨달은 사람-일본의
* 도겐(道元) 선사 : 일본 선종의 일파인 조동종(曹洞宗 : 소-토-슈)의 시조, 후쿠이현 에이헤이지 창건(1244년). 曹洞宗은 중국의 선종 5가(曹洞, 臨済, 潙仰, 雲門, 法眼)의 하나이며, 일본에 있어서는 일본 선종(曹洞宗, 日本達磨宗, 臨済宗, 黄檗宗, 普化宗)의 일파이다. 曹洞宗(소-토-슈) 본산은 에이헤이지(후쿠이현), 소지지(요코하마-쯔르미구)이다. 무엇보다도 좌선에 철저한 묵조선을 강조했다. (겨울벌레 메모) http://blog.naver.com/pharos915/40059085144
삼매 상행삼매, 상좌삼매
삼매는
풀어서 말하면 정(定)이라, 선정(禪定)이란 뜻입니다. 우리 마음을 한 곳에 딱 머물러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잡념이 없이 하나의 것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우리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해서 산란스러운 마음이 없게 하는 것이 삼매입니다. 보다 더 확실히 말하면 우리 마음을 정법(正法) 즉, 바른 법에 머물게 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삼매입니다.
상좌삼매(常坐三昧),
항상 앉아서 하는 삼매입니다. 우리가 선방에서 하는 것은 주로 상좌삼매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삼매는 앉아서 하는 것만이 삼매는 아닙니다. 사람의 행습이나 습관이 다르고 개성이 달라놔서 어떤 사람은 앉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걷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부처님 이름 외우기를 좋아하고, 그와 같이 차이가 많이 있어놔서 한 가지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하는 기본적인 것은 역시 앉아서 하는 삼매입니다.
상행삼매(常行三昧)
항상 서서 하는 삼매입니다. 도량이나 부처님 주위를 뱅뱅 돌면서 하는 삼매입니다. 우리는 절에 가면 탑돌이 같은 것을 합니다. 또한 법당에서도 이따금 부처님 주위를 뱅뱅 돌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상행삼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앉기만 하면 다리도 아플 것이고 또 앉는 버릇을 못 붙인 분은 잘 안됩니다. 그런 분들은 산책하면서 합장하고 부처님 이름을 외워도 무방합니다.
상행삼매를 다른 이름으로 반주삼매(般舟三昧)라고도 말합니다. 반주삼매라는 말은 또 불립삼매(佛立三昧)라, 부처가 앞에 서서 나타나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어떻게 하는고 하면, 일주일 동안을 한계를 두고서 하는데, 옷도 하루에 한번 이상 갈아입고, 목욕도 하루에 한번 이상 하고, 누구하고 말도 전혀 않고, 음식도 하루에 오전에 한번만 먹고, 간식도 안 먹고 이렇게 하면서 자지 않고 눕지 않고 부처님 주위나 도량 주위를 이레 동안 안 쉬고서 돌면서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찰나도 틈도 없이 이렇게 하면은, 웬만한 사람 같으면 7일 만에 반드시 부처님이 척 보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이시는 것은 사람 모양을 한 모습만으로는 아니겠지요. 부처님의 무량광명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해보십시요.
그런 때에는 '보보성성염념 유재아미타불(步步聲聲念念 唯在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 오직 걸음걸음, 소리소리, 생각생각에 아미타불이요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입니다. 걸음 걸을 때 한 걸음도 놓치지 않고서 염불하는 마음, 또 소리마다 염불하는 소리,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이 없이 염불하는 생각, 이와 같이 오직 아미타불만 왼다는 말입니다. 아미타불 대신에 관세음보살도 무방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려면 적어도 이렇게 한 번씩은 해봐야 합니다.
중국의 선도(善導 613~681) 스님은 승려가 된 뒤에 평생 동안을 한 달에 7일씩 꼭 이렇게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평소에 앉으면 극락세계가 훤히 보였다는 것입니다.
참선공부 하려면 꼭 이와 같은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나 우리가 용맹정진하는 그 뜻도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이란 경에 의거해서 우리도 한번 해본다는 의미로 이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기가 약하니까 관용해서 여러 가지로 합니다만 원칙은 아까 말씀한바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 허망합니다. 허망한 인간인 우리가 기왕 성불하려면 이와 같이 힘든 고비는 몇 번이나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항상 앉고, 항시 걷기가 어려운 사람은 또 근기에 맞추어서 반행반좌(半行半坐)라, 반쯤은 걷기도 하고 반쯤은 앉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도 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기 마음 따라서 더러는 걷기도 하고 더러는 앉기도 하는 비행비좌(非行非坐)라, 걷는 것도 아니고 앉는 것도 아니면서 삼매 공부를 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공부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꼭 어느 것이 옳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화두하는 참선이나, 묵조선이나, 일행삼매나, 모두가 다 어떤 하나만이 옳다고 고집하면 벌써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불법은 모든 것을, 모두를 다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불법은 이슬람식이나 또는 기독교식이나 다 포함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한테 맞는 것을 골라서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골라서 하되, 아까 말씀마따나, 반주삼매 또는 불립삼매라, 부처가 눈앞에 나타나는, 그런 정도의 삼매를 한번 용맹스럽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 삼동(三冬)은 안자고 안 눕는 것도 겨우 끝에 가서 이틀만 하기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용맹정진 기간 중에는 시설도 좀 더 잘 꾸며서 꼭 이와 같이 반주삼매를 모범 삼아서 한다고 생각할 때는 틀림없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많은 분들이 나오시리라고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http://blog.naver.com/muju5/50037685613
앉는 것 중요
반듯히 곧게 펴고 앉아야
균형잡히게 앉아야
혈액순환 잘 되게 힘 빼고 앉아야
몸의 피부가 바닥에 많이 닿도록 앉아야
안정적이고 무게가 고루 퍼지도록 앉아야
가능한 가부좌가 좋지만 반가부좌
방석은 접거나 구겨서는 안 돼
방석은 하나로 족하다.
卒啄同時(줄탁동시)
어미가 품에 안은 알 속에서 조금씩 자란 병아리가 있다.
이제 세상 구경을 해야 하는데 알은 단단하기만 하다.
병아리는 나름대로 공략 부위를 정해 쪼기 시작하나 힘이 부친다.
이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닭은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 준다.
답답한 알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병아리는 비로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줄」이라 하고
밖에서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것을「탁」이다.
그리고 이 일이 동시에 발생해야 어떤 일이 완성된다는 것이「줄탁동시」이다.
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가르침이자 매력적인 이치가 아닐 수 없다.
행복한 가정은 부부(夫婦)가「줄탁동시」할 때 이루어지고
훌륭한 인재는 사제(師弟)가「줄탁동시」의 노력을 할 때 탄생하며
세계적인 기업은 노사(勞使)가「줄탁동시」할 때 가능한 것이다.
또한 국가의 번영이나 남북관계 그리고 국제관계에도「줄탁동시」의 이치를
공유하고 함께 노력할 때 성공과 발전이라는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줄탁동시」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그 첫번째는「내가 먼저 변화하기」이다.
어느 방송국의 로고송에 있듯이 세상의 이치는 “기쁨주고 사랑받는” 순서이지
"사랑받고 기쁨주는" 순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상대로부터 화답이라는 선물을 받으려면
고뇌와 헌신이 듬뿍 담긴 변화와 혁신을 통해 기뻐할 일을 만들어 내야한다.
가정이라면 배우자가 기뻐할 일을 준비하여야 하고
기업이라면 새로운 혁신가치를 먼저 만들어 내야 시장의 열광이 따르는 것이다.
두번째는「경청」이다.
어미닭이 아기 병아리가 부화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알려면
또 어느 부위를 두드릴 것인지를 먼저 시그널(signal)을 잘 듣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병아리에게 필살의 도움을 줄 수가 있고, 함께 기쁨을 만들 수 있다.
가족의 소리, 고객의 소리,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으면 위대함이란 없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 말이 있다.
경청하지 않는 것은 받은 선물을 아무렇게나 뜯어 던져두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에게 누가 다시 선물을 주겠는가
세번째는「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변화와 혁신이라도 상대방이 갈망하고 있는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일은 낭패를 본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고객가치에 소비자들이 목말라할 때, 혁신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시장과 고객이 보내오는 열광과 감동의 화답을 받을 것이다.
위대한 조직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과 함께 손을 맞춰 박수를 칠 수 있는 기업”일 것이다.
네번째는「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나의 노력이 항상 인정을 받아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의 안쪽을 쪼았다고 반드시 상대방이 바깥쪽을 쪼아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경우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상대방의 묵묵부답으로 온갖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다. 기업의 경우, 필살의 노력으로 새로운 제품을 내었다 해도 늘 히트상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줄탁동시」의 묘는 기다림에 있다.
고객과 함께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만들기 위해
늘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과 밖, 명과 암, 나와 너…
이 두 가지가 만나 새로운 열정과 에너지를 창조하는 원리.
「줄탁동시」로 세상사는 법을 더 생각해 봐야겠다.
<글.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센터 강신장 상무>
이근원통이란
무심(無心)으로 부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속으로
일심(一心)으로 내가 쏙 들어 가 버리는 것을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 한다.
현우경(賢愚經) /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
난타라고 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고독하여 늘 구걸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서 안거하고 계셨다.
국왕과 모든 백성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많은 공양을 베풀고 있었다.
난타여인은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처님 같은 복밭을 만나고서도 공양을 드릴 수 없는 것일까?'
못내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조그마한 공양이라도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일터에 나가
밤 늦도록 부지런히 일했지만 얻어지는 것은 겨우 몇 푼에 불과하였다.
그녀는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사려고 했다.
기름집 주인이 물었다.
"부인, 1전어치 기름은 사 봐야 쓸 데가 없을텐데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거요."
"부처님과 제자들께 불을 켜 공양하기 위해서입니다.
돈이 적지만 이것만큼이라도 주세요."
기름집 주인은 사정을 듣고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다.
그녀는 그 기름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등불을 하나 만들어
불을 켠 뒤, 절로 올라갔다.
그녀는 그 등불을 부처님께 바친 뒤 서원을 세웠다.
'저는 지금 가난하기 때문에 이 작은 등불 하나만을 부처님께 공양하나이다.
그러나 이 등불은 저의 큰 재산을 바치는 것이오며, 따라서
저의 마음까지도 모두 바치는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이 인연 공덕으로 저도 내생에 지혜광명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없애게 하여지이다.'
이와 같이 소원을 말하고는 부처님께 예배한 뒤 떠났다.
밤이 지나고 이른 새벽이 되어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다른 등불은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새벽이 가까워져도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날 불을 끄는 당번은 목건련 존자였다.
목건련 존자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신통제일(神通第一)의 위대한 현자였다.
목건련 존자는 등불을 끄기 시작했다.
낮에 불을 켜두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껐다가
다음 날 밤이 되면 다시 켜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나 하나 불을 꺼나갔다.
그런데 유독 난타 여인의 등불만은 꺼지지 않았다.
입으로 불어도 끄떡하지 않고 다시 옷자락으로 끄려 하였으나 역시 그대로였다.
부처님께서는 목건련이 불을 끄려고 애쓰는 광경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지금 네가 끄려고 하는 그 등불은 너희들 성문(聲聞)의 힘으로 꺼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사해의 바닷물을 길어다 붓거나
크나큰 태풍을 몰아온다 하여도 그 불은 끌 수 없다.
그 등불을 보시한 사람은 자기의 재산과 마음을 진실하게 바친 뒤
일체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것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불러 그녀에게 수기(授記)를 주셨다.
"너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불국토를 성취하고 부처가 될 것이다.
그 이름은 등광(燈光)이라 할 것이고, 여래의 열 가지 명호를 모두 갖출 것이다."
이에 난타 여인은 수기를 받고 기쁜 나머지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아 출가하기를 원했다.
부처님께서는 쾌히 승낙하시고 그녀가 비구니가 되도록 허락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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