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5일 화요일
용수존자(龍樹尊者, ?~기원전 212) 용수 보살의 중관론 심법(心法)
혜문스님 중국 천태종의 2조
혜사스님 - 혜문 스님의 제자 남악혜사(南岳師).
천태대사의 스승인 혜사(慧思)를 가리킨 말. 성은 이씨(李氏). 혜문(慧文)을 스승으로 섬겨
법화삼매를 얻고, 뒤에 남악에 살았으므로 남악대사라 일컬어졌다.
지자대사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자대사(智者大師)라고도 한다.
속성 진(陳). 자 덕안(德安). 진(陳)나라 말과 수(隋)나라 초의 유일한 학장(學匠)으로 불리며, 천태교학(天台敎學)의 대성자이다.
18세에 법서(法緖)에서 출가하여 560년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의 혜사(慧思)에게 사사하였다.
568년 이후 7년간 진링[金陵:南京]의 와관사(瓦官寺)에서 《법화경(法華經)》과 《대지도론(大智度論)》을 강의하였다. 575년 이후는 천태산에 머물면서 천태교학을 확립하였다.
진제(陳帝)와 그의 후계자들로부터 신임이 두터웠는데, 칙명으로 10년 후에는 다시 진링으로 나와 광택사(光宅寺)에서 《법화문구(法華文句)》를 강의하였다.
진(陳)나라의 병란을 루산[廬山]에서 피하고, 591년에는 진왕(晉王) 양광(楊廣)의 간청에 따라 왕에게 보살계(菩薩戒)를 베풀고 왕으로부터 지자대사의 호를 하사받았다.
그 후 징저우[荊州]의 옥천사(玉泉寺)를 개창하고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을 강의하였는데, 이 세 저서는 천태 3대부(天台三大部)로 불리었다.
그 밖에 《관음현의(觀音玄義)》 《관음의소(觀音義疏)》 《금광명현의(金光明玄義)》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방생회(放生會)를 최초로 시행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남북조시대 - 학파 번성, 호불적 시대. 교상판석 화엄경
북 - 실천 수행
남 - 경전 이론 연구
천태대사 - 이론과 ㅅ;ㄹ천을 통합시키려 노력
수나라 - 불교학파
당나라 - 불교 종파. 천태종의 암흑기
천태 - 산 이름
천태산 - 도교의 성지 였음
천태대사가 천태종의 경지로 만듬
천태종 - 천태대사의 종파
천태대사
양자강 남쪽 형주에서 진기조씨와 서씨 사이에 태어남. 형 진침을 위해 소지관 지음
오색 향, 흰 쥐 태몽
7세 절에서 보문품 듣고 기자리에서 외워
17세 금빛 서린 꿈 꾸고 출가 결심
18세 출가. 형주 근처의 절
20세 구족계 받아
23세 관주 남악산 혜사대사 만나 선법 공부법화경 안락행품 외워
법화3매 - 대소산에서의 첫번째 깨달음
천태대사는 믄자법사도 암중선사도 아니다.
법의 신하가 나타나니 법의 왕이 할일이 없구나.
31세 금릉에서 천태 진가 발휘
수양제가 천태대사를 소석가라 감탄
금릉 와간사에서 8년간 법 펴
천태산에 홀로 들어가 돌다리에 앉아 기도. 누워서 꿈 꿔(황제 절터에 절지어라)
꿈속에서 정광선사 만남
화정봉우리에서 어느날 비바람, 천둥, 번개치던 날 마구니 쫓아 - 화정봉의 큰 깨달음
천태삼대부 지음, 강의
형주 옥천사 세움
57세 때 천태산에
저서 유마경서 - 유마경 해석 - 천태대사 최후의 저작품
597년 60세 때 열반. 상복 입지 마라, 울지 마라. 탑만 세워라. 아미타경 염송하라 하심
지관법, 수행법 염불법
천태대사의 선법 선종이 가져감
누더기 한 벌로 가심
마지막 말
- 나의 스승과 나의 벗이 관세음보살과 같이 오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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