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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북루 현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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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2일 금요일

 

공산성 공북루에 걸린 현판은 나로서는 도저히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다.

13점이나 걸려 있는 중수기와 시가 지닌 심오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한문 공부를 한참이나 해야 할 것 같고

이제부터 공부하기도 그렇고 한문 조금 알아서는 잘 해석할 수 있으려나 그것도 의심이다.

그래서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유능한 한문 전공하신 분들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공북루에 걸린 현판들을 알고 싶은 심정으로 내가 잘 아는 한문 전공 선생님께 부탁드렸더니 답이 왔다.

한문교육학 박사이시고 충남 교육발전을 위해 항상 바쁜 나날을 보내는 분이라 부탁드리기도 어려웠는데

기꺼이 시간을 내어 조사 연구하신 결과를 첫 번째로 보내주셨다.

 

나는 잘 안다 그분의 성품을.

집념이 대단하고 하고자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을 보는 성격이라 다른 일 뒤로 젖혀 두고 알아보았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좋게 보고 수긍이 갔을 터이고 오랜만의 부탁을 저버릴 수가 없었을 테고

이것저것 생각하여 맘먹고 응해주신 것이 여간 고마운 게아니다.

이렇게 소상하게 조사해 주시니 바쁜 분에게 더 이상 부탁하기 어려운 마음이 든다.

 

최 창석 문화원장도 공북루 현판의 풀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안다.

우리 공주의 공산성, 공북루의 한문으로 된 현판들이 모든 사람에게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공주의 유능한 인사들이 대들어 협력하여 풀어 불 방도를 찾아보자고 부탁드릴 참이다.

엊그제 최 문화원장도 나의 생각에 공감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 같은 언질을 주셨다.

최 원장님이 생각하기에 따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처음으로 보내주신 김 박사님의 원고를 복사하여 싣는다

 

◎공산성 현판으로 읽는 공주 역사 이야기(1)
 -공북루에 걸린 충청도관찰사 홍수주(洪受疇)의 한시
백제의 고도이자, 고려, 조선 대의 충청도 관청 소재지인 공주에는 옛 선인의
자취가 곳곳에 서려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公山城(공산성)에도 금강
변의 강둑과 산세를 따라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이 또렷하게 남아
있어, 그 길 따라 자박자박 걷다 보면 굽이마다 전망 트인 누각과 그 안에 걸린
현판을 통해 고즈넉한 옛 선비의 감성을 가만히 보듬어 보게 된다. 公(공) 자를 담아 公山(공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1)는 옛말처럼, 영은사 앞쪽으로 왼쪽 산성에서 가파르게 내려오는 끝자락에서 갑자기 강둑과 만나 평평하게 드러난 곳이 바로 공북루(拱北樓)2)가 들어선 곳이다. 

도도히 흐르는 금강물
을 바로 눈앞에 손 닿을 듯 보이는 곳으로 성안 쪽으로는 강물이 성내로 자연
드나드는 원리로 만들어진 인공 연못이 남아 있고, 성안 곳곳으로 통로가 이어
진다. 조선 선조 36년(1603년)에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柳根(유근) 공이 지은 7 언절
구가 있는데, 현판에 걸려 있지 않다. 그의 문집인 『西埛集(서경집)』에 그 시
가 실려 있어 여기에 원문 대조 번역을 처음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충
청도관찰사로 부임한 그때에 공북루 조성 공사를 처음 시작했는데 절반이 진
행되는 중에 발령에 의해 자리를 옮기게 되어, 완성을 보지 못했다는 설명과
함께, 다음의 7언절구(7언 4구 28자) 한 수가 남아 있다. 

 

一片公山錦水頭。한 조각 공산성 금강 머리에 있으니
일편공산금수두
湖西控扼此咽喉。호서 땅을 막아 지키는 길목이 여기로다. 

호서공액차인후
經營未半身先去。공사 절반도 못하고 이 몸이 먼저 떠났는데
경영미반신선거
尙有巍然百尺樓。백 척 누각이야 우뚝하게 지금도 서 있겠지. 

상유외연백척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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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공산(公山)의 모양이 공(公) 자를 닮아 공산이란 이름을 지었다
고 되었다고 전한다. 실제 공북루 건너편인 신관동에서 공산성을 살펴보면, 양쪽으로 벌어진 산성의
능선은 공자의 여덟 팔자에 해당하고, 영은사와 공북루가 있는 움푹 들어가 평평하게 좌우 능선을 잇
는 모양이 공(公) 자의 아래획인 사(厶) 자 모양으로 비슷하게 보인다. 2) 공북루(拱北樓): 우리나라의 산성에서 북문에 설치된 누각에 붙이는 이름으로 여러 곳에 보인다. 수
원 화성, 청주 상당산성 등에도 같은 용례가 있는데, 그 의미는 세 가지로 풀이 가능하다. ⓵ 논어의
의미를 따서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북극성을 향해 뭇별이 둘러 바라본다는 기본 의미. ⓶ 북극성을
황제에 비유. 우리나라 힘이 없어 중국의 번국(제후국)으로 자처할 때 중국 황제를 우러러본다는 의
미. ⓷ 북극성을 조선 임금에 비유, 경기 이남 지역의 산성에서 북쪽 한양 임금을 향해 우러러본다
는 의미. 여기서는 ⓷번이 근접함.

 

시의 내용에도 정확히 그 경위가 설명되어 있어,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조성
은 1603년에 관찰사의 책임 하에 처음 조성 공사를 시작하여 그가 떠난 후인
1604년 즈음에 완성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공북루 안쪽에 달려 있는 현판 작품은 역시 충청도 관찰사였던 홍수주(洪受疇)의 한시이다. 홍수주(洪受疇)는 1642년(인조 20)에 태어나 1704년(숙종 30)에 돌아갔는데, 문집 『壺隱集(호은집)』 이 남아 있다. 현판 내용만으로는 누군가의 시에 차운(次韻: 타인의 한시 운자를 따라 지음)
하여 지었다는 것밖에 알 수 없지만, 그의 문집 『壺隱集(호은집)』 에는 현판 속의 한시가 실려 있고 제목 아래 설명이 적혀 있어 연원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금강 근무 시절 곧 충청도관찰사로 공주에 있을 때의 기록으로, 병자년(1696년, 숙종 22년) 5월에 湖西伯(호서백-충청도 관찰사)에 제수되어, 전최법(殿最法:인사 고과 평정)에 따라 그해 12월에 파직되어 정축년(1697년, 숙종 23년) 2월에 집으로 돌아갔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홍수주의 이 한시는 100년 전에 충청도관찰사로 와서 공북루 공사를
시작하고 한시를 남긴 서경 유근 공의 작품을 보고, 그 한시의 운자(頭/喉/樓는 평성인 尤자운에 속함)를 따라지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속의 현판 한자를 탈초하여 그대로 읽고, 그 내용이 문집에 실린 것과 다른 것은 주석으로 달아 둔다. 그의 시 형식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내용 속에 있다. 역시 아직 번역한 이가 없어, 처음 원문대조 번역글을 소개한다.

 

鷄嶽秋雲傍馬頭。계룡산 가을구름 말머리 따라오는데
계악추운방마두
偶携3)㫌節到雄州4)。발령장 받아 어느새 웅주에 이르렀네. 

우휴정절도웅주
南廵王氣今雙樹。남으로 행차하신 왕의 기운이 여기 쌍수에 있어
남순왕기금쌍수
北望臣心此一樓。북쪽 임금을 향하는 신하 마음이 이 누각5)일세. 

북망신심차일루
逈枕6)湧湧7)長路走。베개머리 마음 아득하니 기나긴 노정 달려왔구나
형침만만장로주
平臨滚滚大江流。가만히 앞을 내다보니 도도한 물길 금강이 흐르네. 

평림곤곤대강류
酒酣8)落筆酬前債。술을 실컷 먹고는 시 한 수로 외상값을 치렀다니
주감낙필수전채
奇絶男兒特地遊。 출중한 남자라서 특별한 땅에서 노니셨구려. 

기절남아특지유

 


시구를 살펴보면, 3구 속의 ‘雙樹(쌍수)’는 공산성의 쌍수정 앞 두 그루 나무
이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했던 시절, 인절미 전설과 함
께 전해지는 인조가 궁궐로 돌아갈 날을 기대어 기다리던 그 쌍수임에 틀림없
다. 4구 구절의 의미는 누각 이름인 ‘拱北(공북)’의 의미를 그대로 풀어내 임금
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7구와 8구는 옛날 낭만 시객들이 가는 곳마다 외상술을 먹는 흔적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이 시구만으로 추론해 본다면 관찰사 유근 공이 특히 시와 서화
(포도 그림)에 뛰어났기 때문에 아마도 주막에서 실컷 외상술을 얻어먹고는
포도 그림 한 자락이나 시 한 수를 던져 주며 외상값으로 대신하는 호기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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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携(휴): ~끼고. 문집에는 隨(수)로 되어 있음. 시의는 비슷함. 4) 雄州(웅주): 문집에는 公州(공주)로 되어 있음. 雄州(웅주)는 熊州(웅주)의 오기이거나, 빼어난 고을이
라는 의미로, 어떤 뜻으로 해석해도 결국 公州(공주)를 가리킴. 5) 拱北(공북)의 ⓷의미 풀이 참조. 6) 逈枕(형침): 枕(침)자는 指(지)로 전하기도 함. 7) 湧湧(용용): 문집에 漫漫(만만)으로 기록됨. 시의는 비슷함. 8) 酒酣(주감): 술에 취하여. 문집에는 興來(흥래): 흥취가 올라옴에

 

 

린 일화가 전해 오지 않았나 싶다. 공산성을 찾는 이라면 산성 따라 한 바퀴 돌면서 금강을 아우른 멋진 풍광과
아담한 듯 한눈에 들어오는 구시가지, 그리고 산책 삼아 공북루에 들러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판에 잠시 눈길을 주어도 좋겠다

2021. 1. 22

유림학당 주인 한문교육학 박사 하루(何陋) 김국회(金國會) 씀

 

hanja4u.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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