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9일 일요일
요즈음 몸이 쉬 피로하고 잠만 오고 움직이기 싫어지는 건 봄이 오고 있다는 표시인가 아니면 나이 들어서 늙는 징조인지 모르겠다. 일요일이라 론볼장도 휴장이고 시간 맞춰 출근할 곳이 없는 날이라 늑장을 부렸고 늦은 아침 식사 후에 그냥 온종일 방안에만 있었다. 저녁때 계란 한 판과 찌갯거리 돼지고기 사러 갔다 온 개 오늘 외출의 전부다.
아침나절 창문을 열고 바깥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창밖의 하얀 목련과 노란 산수유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나는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산다. 운 좋은 사람이다.

하얀 목련을 보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시간에 '사월의 노래' 배울 적 생각이 난다. 박목원 작사 김순애 작곡 이 노래를 김용래 선생님이 수업하실 때 아직 애송이 우리들 학생들에게 핀잔도 하시면서 예술성을 넣어주시려 애쓰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는 목련꽃도 드물었고 베르테르니 거기에 얽힌 사연이 뭔지도 몰랐던 우리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던 음악 선생님은 퍽이나 답답하셨을 게다. 그때 배웠던 노래라는 것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집 앞 하얀 목련꽃이 새롭게 보인다.



중학교 때 우리 국어선생님은 이철희 선생님이셨다. 1960년 초면 지금부터 60년이 훨씬 지난 아주 옛날 그 당시 선생님은 우리들을 교실 밖으로 끌어내셨다. 학교 부근 언덕 잔디밭에서 야외 수업을 이끄셨는데 주변의 나무와 풀들 자연을 보면서 우리들에게 느낌이 없느냐며 뭔가를 생각하여 글을 써 보라는 것이었다. 교실 안에서 학과를 나갔던 당시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을 보고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해 보라는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뭐라도 찾아 썼을 텐데 당시는 쓸 수 없었다. 보이는 건 많은데 그것들을 어떻게 글로 나타낼지를 몰랐던 나였던 것이다. 그래도 그 기억이 생생한 것은 우리들에게 자연을 보는 눈과 보이는 것들을 글로 나타낼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신 선생님의 당시 생각을 높이 사고 싶고 고마운 선생님임을 말하고 싶다.
지금의 시인 나태주는 사범학교 다닐 학생 때 가끔 혼자서 강가를 거닐기도 하고 운동장 한가운데를 서성이는 남다른 모습을 보았는데 아마 시상을 떠 울리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나태주 시인 말 가운데 뭔가 마려워야 나온다는 것이다. 푹 익어야 태어난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마음, 필요한 마음, 아쉬운 마음은 무르익어야 이우어진다는 말 같다. 무엇이 태어나려면 필요성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1960년 대 아주 오래전 수업 장소를 교실에서 야외로 옮겨 자연 속에서 학생들에게 색다른 경험시키려 했던 시도는 흔하지 않았다. 당시 사대부고 국어 담당 신현보 선생님도 과감한 수업장소의 변화를 준 분으로 기억된다. 본관 교실에서 뒤쪽은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계단길에는 큰 나무 그늘이 이어져서 숲 속 야외 교실로 적당했을 것이다. 거기서 수업하시던 선생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야외 수업은 산만하여 주의집중 문제도 있어서 쉽게 시도하기 어렵지만, 신선한 분위기 조성과 자연을 벗 삼는 정서적 측면에서 필요할 때 시도할 수 있는 장소 선책이라고 생각된다. 딱딱한 틀에 박힌 장소를 벗어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빡빡함에서 숨통을 좀 틔고 살자.
내가 사범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손재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지금 말하면 노작교육, 현장 실습교육을 실천하신 분이다. 힘의 전달 단원에서 자전거를 교실 앞에 들여오고 , 밀링 수업은 산성동 대창철공소로 현장 학습을 시켰을 뿐 아니라 우리 학급 사육학습으로 닭장을 지어서 닭의 성장 과정을 익히게 하셨던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는 선생님 중의 한 분이다.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은 외지에서 와서 하숙이나 자취생활을 하다 방학이라 모두 집에 가고 공주 사는 내가 방학 내내 닭장 관리 책임을 혼자 맡은 적이 있다. 사료 주는 일 쉬운 것 같지만, 방학 내내 혼자서 하기란 좀 어려웠다. 혼자만의 어려움이었지만, 객지 친구들을 위하고 닭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면 보람 있는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