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공주개명사

신행수기(공주 개명사 신도 임향란)

ih2oo 2011. 8. 2. 09:17

천태종 제3회 신행수기 장려상 - 4박 5일 기도

 

“구인사서 기도·울력으로 초발심, 利他 실천 서원”

 

임향란(공주 개명사 신도)

 

주 5일제 근무를 하면서 무의미하게 연휴를 보낼 때도 있다. 2010년 7월 18일 이날 역시 아침부터 안방과 거실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불현듯 며칠 전에 “남해 보리암, 대구 팔공산, 단양 구인사 세 곳 중에 한 곳에 가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신통함이 있다”고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세 곳 중 구인사에 가장 가고 싶었다. 어디 가자고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표정을 보니 오늘만큼은 조금 조르면 갈 것처럼 보였다. 점심을 먹고 구인사에 가자고 말했더니 남편은 망설이는 듯하다가 흔쾌히 승낙했다. 점심을 먹는 듯 마는 듯, 중요한 약속을 잊었다가 기억나서 서두를 때보다 더 정신없이 채비를 하고 떠났다.

 

그 흔한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일단은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게 가장 빠를 것이라 판단하고, 낮 12시가 넘어 출발해 중앙고속도로 제천IC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6시간 만에 겨우 구인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신혼여행을 강원도로 갔던 일이 스쳐 지나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단양 고수동굴에 들렀다가 어머니께 인사차 전화를 드렸더니 “고수동굴에서 구인사까지 얼마 안 걸리니까 꼭 들려서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전화를 끊고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구인사까지 몇시간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한 시간은 걸릴 것 같단다.

 

남편과 나는 오랜 운전으로 피곤하기도 하고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한 채 돌아서고 말았다. 이때 구인사에 갔더라면 천태종과의 인연은 18년 쯤 당겨졌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아쉽고 또 아쉬울 따름이다.

 

말로만 듣던 구인사에 도착해 둘러보니 소백산 골짜기에 자연훼손 없이 장엄하게 지어진 구인사의 모습은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했다. 5층 건물인 법당 쪽으로 올라가는데 글귀 하나가 급하게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나. 사용하다가 버리고 갈 뿐이다.”

 

상월원각대조사님의 법어 중 한 말씀이란다. 같은 의미에서 잠시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떠오르면서 모든 화의 근원인 욕심을 버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5층 법당에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데 옆에 있던 보살님이 “천태종은 그렇게 절을 하는 게 아니다”며 절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를 따라 절에 다녔고, 결혼 후에는 조계종 사찰에 18년간 다녔기에 그 외 다른 불교 종파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나에게는 모든 게 생소하기만 했다. 삼보당에 도착해서는 배운 데로 절을 올리고 나오는데 삼보당 안에 계신분들이 누굴까 궁금했다.

 

그때 남편이 “삼보당으로 들어갈 때 어느 스님께서 당신을 보더니 기도 많이 하라고 하시더라”고 전해주었다. 그 말에 귀가 솔깃해져 남편에게 그 스님을 빨리 찾아보라고 재촉했다. 마침 옆에 있던 스님에게 남편이 그 상황을 설명하고 물어보니 그 스님의 법명을 알려주고 전화하면 통화도 가능할 거라고 했다. 통화를 마치고 그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은 나를 보더니 또 “기도 많이 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4박 5일 기도를 꼭 하라면서 급히 자리를 떴다.

 

4박 5일 기도가 무엇인지 궁금해 삼보당에서 내려오면서 총무원에 들러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는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뭔가가 끓어오르는 기운이 느껴졌다. 남편과 함께 첫 방문한 구인사는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4박 5일 기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른 때였으면 벌써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까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수다를 떨었을 텐데, 자나 깨나 4박 5일 기도 외엔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내다가 7월 27일 밤 구인사 스님들이 무리를 지어 오시더니 나를 보고 빨리 구인사로 오라는 것이다. 순간 놀라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부랴부랴 직장에 휴가를 내고 7월 28일, 꿈에 그리던 4박 5일 기도를 하기 위해 공주에서 청주로 가서 구인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제천에서 연세가 많아 보이는 비구니 스님과 그보다 좀 덜 들어 보이는 여신도가 버스에 탔다. 건너편에 앉은 비구니스님과 여신도의 대화를 들어보니 모녀지간이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여신도가 비구니 스님에게 얼마나 잘하던지, 나도 모르게 그동안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던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엄마랑 저렇게 같이 손잡고 구인사에 가는 그림을 잠시나마 그려보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또 다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비구니 스님은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음료수를 주면서 젊은 사람이 기도하러 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로 위로를 해주었다. 두 사람 덕분에 그럭저럭 지루하지 않게 구인사에 도착했다.

 

대조사 법어 읽고 ‘비움’ 결심

종단 3대 지표 실천 적극 동참 다짐

 

4박 5일 기도를 등록하고 4층 기도실에 여장을 풀었다. 기도방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100세쯤 되어 보이는 노인까지 처음 가는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더 놀란다. 자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도 자지 않고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5시간을 꼬박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밤을 지새우기는 커녕 일어나 보면 아침 6시가 되곤 했다. 나는 언제 저렇게 미동도 않고 관세음보살을 불러 볼 수 있을까?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만 같았다. 첫 날은 그렇게 제대로 기도 한 번 못했고, 둘째 날은 큰맘을 먹고 커피를 마셔가며 잠을 쫓으려 해도 왜 그렇게 잠이 잘 오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달콤한 잠속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스님의 죽장이 내 엉덩이를 내리친다. 순간 왜 그리 창피하고 쑥스러운지 옆에서 진심으로 기도에 열중이신 보살님들께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그래 무엇이든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열심히 불심을 쌓다보면 그깟 5시간 기도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했다. 아침공양을 하고 나오는데 공양간에서 어느 분이 설거지를 좀 도와 달라고 했다.

 

비구니스님들은 직접 밥을 짓고, 채소도 가꾸고, 재배도하고, 반찬까지 손수 만든단다. 무·감자·가지·고추 등 어느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자로 잰 것처럼 음식을 써는데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 주부들은 밥하기 싫으면 대충해서 가족들에게 내놓을 때도 있는데,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 나가면서 궁금증이 풀어질 쯤 방앗간 앞을 지나치는데 한 비구니 스님이 무엇을 도와 달라고 했다. 나는 도와드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망설이고 있는데 다른 불자들은 서로 한다면서 달려들어 어쩔 수 없이 동참을 했다.

 

서너 시간 팥과 돌, 수수 그 조그마한 것들을 골라내는 일은 정말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집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벌써 음식물통에 버렸을 것이다. 몇몇 불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내 평상시 생활과 비교를 해보니 죄를 너무 많이 지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때 알게 된 부천에 사는 한 불자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끝까지 묵묵히 하는걸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구인사와는 언제 인연을 맺었고 이런 일은 평상시에도 잘 하는지 등등에 대해 물었다. 답은 의외였다.

 

구인사는 처음이고 자기도 이런 경우 그냥 버린다면서 앞으로 집에 돌아가면 쌀 한 톨이라도 버리지 말고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부천에 사는 불자와 나는 감자 깎기, 고추 썰기, 삶은 가지 찢기, 설거지, 화장실과 천태종역대조사전을 청소하면서 스님일도 거들었다. 이 모든 것이 여럿이서 힘을 합해 일을 하는 ‘울력’임을 알게 됐다.

 

셋째 날 남편은 4박 5일 휴가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3일 휴가만 내고 나를 데리러 와서 2박 3일 기도에 동참했다. 상월원각대조사님 적멸궁을 오르는데 평소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남편은 숨이 가빠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비구니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서 오르라고 했다. 남편은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라했다.

 

적멸궁은 뛰어난 주위경관을 보면서 오르는 극락으로 가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산세가 뛰어나고, 아름답고, 공기도 맑았다. 어느덧 적멸궁에 도착한 남편과 나는 기이한 소나무를 보고 그 자리에서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일송정 소나무 가지는 기적이 일어났는지 가지 하나가 밑으로 쳐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형상이 보는 이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구봉팔문전망대를 보고 2대 종정 대충대종사 적멸궁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길목에 사과 과수원, 드넓은 밭에는 감자와 콩이 심어져 있었고 이 모두가 비구니 스님들이 손수 농사를 지어서 주경야선을 실천하며 천태종의 기본수행 덕목으로 삼으면서 생활불교를 지향한다고 한다.

 

넷째 날 교육을 받기 위해 4박 5일 기도에 동참한 신도들과 인광당에 모였다. 교육을 맡은 스님은 평소 우리가 소홀하며 지나치기 쉬운 예절을 지키면서 살라고 강조했다. 뿌리의 중요성과 공덕을 쌓으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다섯째 날인 마지막 날 남편과 나는 짐을 싸놓고 비구니스님과 들깨밭에 가서 돌멩이를 고르고 풀을 뽑았다. 그곳에서 같이 일하던 여러 신도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자신의 일보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저녁에 야간일이 있는 남편은 서둘러야 했기에 하던 일을 멈추고 12시쯤 우리는 먼저 떠나야 했다. 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 후 남편과 나는 공주 개명사에서 하안거 한 달 기도를 마쳤다. 직장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법회에는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다시 동안거에 들어갔다. 그런데 동안거 전에 ‘일심청정 관음정진 백만독 불사’를 시작한 것을 몰라 동참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안거 중에 개명사 신도들과 상월원각대조사님, 대충대종사님 탄신 법요식에 참석했다. 처음 동참한 상월원각대조사님 탄신 법요식에서 광명전 5, 6층을 꽉 메운 신도들을 보고 나는 구인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에 더 이상 의문이 나지 않았다.

 

천태종 3대 지표인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목표에 적극 동참할 것을 굳게 마음먹고, 자신을 낮추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겸허한 자세와 마음으로 모든 욕심을 버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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