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미소/충남도민 리포터(임혁현)의 글

웅진 백제는 무령왕릉이 말한다

ih2oo 2024. 1. 26. 08:41

백제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공주

공주시 홈페이지에서 공주(公州)는 '흥미로운 역사문화, 아름다운 자연, 즐거운 문화, 새로운 미래가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경험의 도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주는 웅진 백제의 고도(古都)로서 웅진동에 있는 무령왕릉과 왕릉원 그리고 공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전보다 공주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웅진 백제의 역사를 알기 위해 공주를 찾는 사람은 꼭 '웅진백제역사관'과 무령 왕릉과 왕릉원 전시관'을 봅니다. 그 이유는 웅진백제의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알리기 위해 많은 자료를 전시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공주시 웅진동의 웅진백제역사관입니다. 공주에서 공산성 금서루 부근 공산성 회전교차로에 무령왕 동상이 서 있고, 백제무령왕릉 연문에서는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석수와  지석을 비롯한 여러 소장품의 모형들을 볼 수 있다.

공주의 거리 이름도 웅진로, 무령로, 백제큰길 등 웅진 백제를 상징하는 명칭이고 거리를 걷다 보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모형을 흔히 만날 수 있어서 공주는 웅진 백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장이다.

고대 왕국 백제, 그중에서도 웅진 백제의 역사는 공주의 거리에서 느낄 수 있고 무령왕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찾아가야 한다.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은 웅진백제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좋은 교육장이고 학습장이다. 

백제의 옛 수도 공주에 사는 공주 시민인 나도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안내하는 기본적인 지식을 지니기 위해 전시관을 관심을 갖고 전시된 자료를 중심으로 무령왕과 무령왕릉을 알아본다.

공주에 살면서 무령왕릉에 대하여 누가 묻는다면 아는 바를 어느 정도 말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무령왕릉과 앙릉원 전시관'에서 찾을 수 있다.

무령왕릉은
지금부터 1971년에 발굴되었다.
무령왕은 백제 제25대 왕이다.
'송산리고분군'이란 이름이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주 백제 왕릉원에는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모두 7기의 무덤이 있다.
그중 무령왕릉만 피장자가 무령왕인 걸 알지 다른 무덤은 누구의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상 이런 정도만 알지 알고 싶은 것과 꼭 알아야 할 것은 여러 가지다.
무령왕릉과 왕릉원 매표소를 지나면 서쪽을 향한 입구가 보인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 입구

전시관에 전시된 내용은 무령왕과 무령왕릉을 이해하는 자료들이 많다. 그 가운데 몇 개만을 집중해서 살펴본다.

무령왕을 52357일 서거하였으며 2년 뒤인 515(성왕 3) 무령왕릉에 안장되었다. 이후 무령왕릉은 19717월 우연한 기회에 발굴되었다.(출처 20199월 공주 역사 인물 무령왕)

먼저 무령왕릉 안에서 발견된 매지권이다. 매지권(買地卷)을 쉽게 풀어 적은 것을 보면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다. 다만, 매지권에 산 날짜, 매장자 이름, 액수 등을 표시했는데,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이란 이름이 특이하다. 매지권은 땅을 샀다는 증표다.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매지권의 내용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매지권
 

무령왕릉(武寧王陵)은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 501~523)과 왕비의 합장 무덤이다. 19715호분과 6호분 배수로 작업을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덤은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전축분塼築墳)으로 널방은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으며 남북 4,2m, 동서 2.72, 높이 2.93(3.1) m

벽면에는 등잔을 올려놓았던 등감(燈龕)과 창문시설을 설치하였다.

특히 입구에서 출토된 지석(誌石)은 무덤의 주인공과 무덤을 만든 연대를 말해주고 있다.

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을 비롯하여 총 1084,6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국보급 유물 가운데  왕과 왕비의 관식을 알아본다

무령왕 금제 관식은 대한민국 국보 154호이다. (1974년 7월 9일 지정)
금을 두드려 만든 2㎜의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 무늬와 불꽃 무늬를 기본 문양으로 하여 정교하게 오려낸 것으로, 그 전면에는 둥근 모양의 작은 날개를 매달아 장식성을 더했다. 맨 아래에는 줄기가 있는데 아래위로 2, 3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무엇인가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참조 나무 위키)

▲무령왕 금제관식(武寧王 金製冠飾)
왼쪽 관식 높이 30.7㎝, 너비 14㎝.
오른쪽 관식 높이 29.2㎝, 너비 13.6㎝.
 
무령왕비 금제 관식 (武寧王妃 金製冠飾)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ㆍ조사되었을 때, 왕비의 관 안쪽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높이 22.6cm, 너비 13.4cm이다. 국보 제155호.

▲무령왕비 금제 관식 (武寧王妃 金製冠飾) 

 
다음은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이다.

무덤 속에서 발견된 청동 거울은 수대경(獸帶鏡), 의자손수대경(宜子孫 獸帶鏡 ), 신수경(神獸鏡) 등 3점이다.

▲무령왕릉청동 거울 수대경
 
 

▲무령왕릉청동 거울 의자손 수대경
 

▲무령왕릉청동 거울 신수경
 
 

 

▲무령왕릉 무령왕비 베개
 
 

▲무령왕릉 무령왕 베개
 
공주 무령왕릉은 정교하게 설계된 왕릉이다.

▲정교하게 설계된 무령왕릉

 

▲무령왕릉의 등감과 가창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그 명칭이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바뀌었다.

▲무령왕릉과 왕릉원의 설명


  
2019년 9월 공주의 역사인물로 선정된 내용에 무령왕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공주시에서 무령왕은 웅진 백제시대에서 뛰어난 임금으로 지금의 공주를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전국은 물론 세계만방에 알린 임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2019년 9월 공주의 역사인물로 무령왕이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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