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미소/사람들

공주의 시인 나태주(羅泰柱)

ih2oo 2024. 7. 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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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자로 승인된 충남도민리포터 '잔잔한 미소'의 글이다.
http://www.chungnam.go.kr/media/mediaMain.do?article_no=MD0002122824&med_action=view&mnu_cd=CNNMENU00013

공주풀꽃문학관과 시인 나태주(羅泰柱)

공주풀꽃문학관과 시인 나태주(羅泰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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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많은 시인 가운데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는 공주사범학교를 나왔다. 그는 서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공주로 유학 왔다.
그때 10대 1도 넘는 입학시험이 말해주듯 당시는 대학 갈 형편이 못 되는 사람이  사범학교로 몰렸다.
고등학교 3년만 마치면 국민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이 나오고 곧바로 교사로 취직이 되었으니 사범학교는 인기였다.

▲사진 출처 공주사범학교 10회 졸업 앨범

남자는 50명 단일반이라 1학년 때 사1남이 사2남, 사3남으로 올라가 졸업했다.
입학해서 졸업 때까지 50명 변함없이 한 반에서 공부했으니 큰 학교 많은 학생들보다 친밀도가 더 많았다.

공주사범학교는 1963년 1월 21일 졸업식을 끝으로 막을 내려 후배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학교다. 10회가 마지막으로 50명 동기생들은 그 기수를 잊지 못한다.

공주사범학교 10회모임은 서울, 천안, 공주에서 해마다 갖다가 이제 80이 넘은 고령의 동기생들은 지역별로 몇몇이 만나는데  대전 지역에는 요즈음 7,8명이 다달이 만나 추억을 더듬는다.
옛 정이 그리워 매월 만나지만, 공주의 나태주는 시인으로 늘 바쁜 일정으로 이 모임도 나오기 어렵다.
며칠 전 이 모임에 공주의 풀꽃 시인 나태주가 나타났다.  2007년 사경을 헤매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 우리나라 제일의 시인으로 우뚝 섰고 시인이면서 시인의 우두머리인 한국시인협회장도 지냈고 공주문화원장 자리에 8년이나 있으면서 공주 문화 창달에 애쓴 사람이다.

▲ 공주문화원장 시절 나태주
▲나태주 원장 때 만든 공주문화원 글판

 
그가 지금까지 낸 시집이나 작품집 등 수많은 문학 활동은 지금도 이어지며 전국 여러 곳에서 초청하는 문학 강의는 그치지 않으니 참으로 그는 바쁘다. 바쁘게 살아야 아플 겨를이 없는 것 같다.
이제 80이 넘은 고령이지만, 대전에서 갖는 매월 동창 모임에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에게 나 시인은, 얼마 전에 세상 뜬 친구 생각에 살아있는 친구들 만나고 싶어서 왔다는 것이다.
50명 가운데 이미 세상 뜬 친구를 하나둘 세면서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서로 만나서 사는 의미를 더 하자는 그다.
1960년부터 3년간의 사범학교 친구들은 그를 잘 기억한다. 성격이 어딘가 수줍은 듯 온순하면서 괴팍하지 않은 소녀 같은 소년이었던 그는 늘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었다.  
1963년 1월에 있었던 공주사범학교 졸업식, 강당 밖은 겨울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학교 졸업을 아쉬워하며 사은사를 읽은 사람이 누군지 기억하고 출석번호 1번인 키 작은 친구가 졸업 때 한 말 “앞으로 10년 후에 다시 보자”라는 이 말을 기억하는 나태주다.  
졸업 후 10년 후 1972년에 처음 만난 친구들 모습은 과연 그의 말대로 많이도 변했다.

▲1972년 8월, 공산성 쌍수정

동창 모임이 끝난 후 그가 호출한 택시로 유성에서 공주풀꽃문학관까지 함께 오면서 시인과 나눈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편히 왔다. 어떻게 그 수많은 시들을 썼는지, 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동안 방송이나 잡지나 강의나 모임에서 그의 생각이나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는 시 잘쓰는 시인이고 그 시인의 말은 듣기 좋다.
나태주 말대로 라면 누구나 다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독서와 사색과 거기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분출을 기대하면서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방송 출연 한장면

 
나태주 시인의 공주풀꽃문학관은 봉황산 밑에 있다. 공주세무서와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사이에 아담하다,
옆으로 증축 중인 공사 현장이 보인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새 문학관이 몇 달 후 완공되면 큼직한 강의실에서 문학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정기적인 교육 시간도 갖겠다는 나태주 시인의 생각이다.

▲신축 중인 풀꽃문학관

 
공주풀꽃문학관 주변은 나태주 시인의 시들이 게시되어 있고 나 시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풀꽃문학관 주변을 살피고 내부를 보면 좋을 것이다.

▲풀꽃문학관 건축 개요

 

▲시인 조형물

 
풀꽃문학관에서는 나태주 시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문학관 안에는 시화(詩畫)며 도서와 소품 등 기념이 될 만한 것들이 문학관 구조에 맞춰 잘 꾸며져 있다.
문학관을 찾아온 손님에게 손수 내려 주는 차는 그의 정성이 담겨서 차 맛을 더한다.

문학관에는 나 시인이 질 좋다고 자랑하며 아끼는 풍금도 있다. 그 소리 잘 나는 풍금 앞에서 동요 ‘과꽃’을 노래하는 그는 80대 노인이 아니라 아직도 동안이다.

▲풍금 치는 나태주 시인

그는 만나는 사람을 진솔한 마음으로 위한다. 그의 사인은 독특한 자신의 필체로 이름과 그의 시 한 편을 적는다.
친구인 나에게도 자신이 지은 책을 주면서 하나하나 정성으로 사인을 한다. 그야말로 건성건성이 아니다. 그 태도가 오랫동안 그의 몸에 밴 모습이다.
외지에 가거나 찾아오는 사람에게 꼭 이렇게 정성으로 이름을 적어 주니 받은 사람 모두는 그의 친절을 오래 기억한다.

2007년 교직에서 퇴임했지만, 그의 강의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매년 200여 차례 전국을 다니며 문학 강연을 하고, 풀꽃문학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인생에 대하여 가르침을 준다.
그는 방송이나 잡지에서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말한다. 그의 말이나 글은 어려움이 없다. 그의 시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 본 적 없듯이 언제나 그의 말은 들을 만하다.

▲ 방송 출연 중의 한 장면

 
나태주는 공주를 사랑하는 시인이다. 공주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다닌 3년의 학교생활로 시작한 나태주의 공주 생활은 그를 아담한 도시, 아름다운 도시 공주에 푹 빠지게 했다.
학창 시절에 금강 백사장을 거닐면서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던 그다. 
일락산 중턱의 아카시아 향기와 우람한 가로수 플라타너스 그늘을 좋아했고, 공주 사람들의 훈훈한 정을 좋아했다.

▲공주세무서 명예서장 나태주

  
나태주의 시는 공주 원도심 골목 어디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 나태주 시 골목이 공주에는 수도 없이 많다.
나, 너, 서로, 사랑, 선물, 행복, 기쁨, 그리움 등 나태주의 시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언어들이다.

▲나태주의 시 '비단강'
 

공주 원도심 골목에서 만나는 나태주의 시  
 
나태주 시인은 지금 건강하다. 올해도 풀꽃문학상 시상과 풀꽃문학제는 열릴 것이다.

10월 12일과 13일에 열 계획이란다. 기대된다. 

나태주는 공주 사람이다.
나태주 시인은 충청남도의회 홍보대사이다.
나태주 시인은 우리 충남의 보배다.

▲나태주 시인

 
공주풀꽃문학관: 충남 공주시 봉황로 85-12 (전화 041-881-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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