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미소/잔잔한미소

좋은 생각

ih2oo 2012. 2. 22. 18:37

2012년 2월 22일 수요일

좋은생각 2012년 3월호를 받았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밝은 이야기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 콘텐츠 잡지

좋은생각

3월호 특집은 소문아 날 사려!

 

 

 

지난해 12월 20일날 좋은생각 잡지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이번 2월호 특집에 실리지는 못하고, 사실은 낙방된 글이 된 셈인데

격려의 뜻에서인지 이번 달 3월호 책 한권을 보내 준 것이다.

 

고집불통, 우리 이모님

임혁현

 

내 나이 60대 후반인데 나에게 90이 가까운 이모님 한 분이 계십니다. 이모님을 만나 뵐 때마다 늘 50년 전의 일이 생각나곤 합니다.

1960년대 초 내가 겪은 바로는 주변에 세끼 흰 쌀밥을 맘껏 먹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먹고살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때의 인사말이 「안녕하십니까?」 보다 「진지 잡수셨습니까?」라고 했을까요.

그 어려운 시기에 흰 쌀밥을 맛있게 먹었던 사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얘깃거리도 안 되는 고집불통이요 막무가내이신 우리 이모님 이야기입니다. 이제 많이 늙으신 나의 이모님, 당시 내가 어렸을 적 이모님의 고집스러운 사랑을 이제나마 말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흔히 「내한(耐寒) 훈련」이라고 하여 전교생 「토끼몰이」를 연례행사로 매년 학년 말쯤에 실시했습니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아침부터 학교 근처 야산으로 토끼몰이를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마침 토끼몰이를 간 곳이 우리 이모네 동네 뒷산이었지요. 잘 됐다 싶은 마음에 이모님께 인사라도 드리려고 잠깐 우리 대열에서 이탈하여 이모님 댁에 들렀더니 우리 이모님, 나를 보시더니 대뜸 웬일이냐? 어서 들어와라, 내 금방 밥해줄 테니 먹고 가라시면서 하시던 일 멈추시고 꼭 붙드시는 거였습니다. 일행이 있어서 가야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셨습니다. 너 우리 집에 자주 오지도 않는 애가 밥 한 그릇 먹고 가라는데 무슨 소리냐며 못 간다고 다그치시는 것이었습니다. 부엌에서 아궁이 불을 지피시는가 했더니 언제 했는지 밥을 금방 해서는 사발 가득히 고봉으로 한 그릇 푸고 김장 김치 한 그릇 새로 썰어 먹음직하게 상 받쳐 들고 오셔서 얼른 먹으라는 겁니다. 잠깐 인사나 드리려고 왔다가 이런 이모님 말씀을 거역 못하고 일행이 걱정은 됐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먹고 일어설 때까지 지켜보시는 이모님의 고집에 그냥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치웠던 기억이 훤합니다. 점심때는 안 됐지만 한참 적 장정이었던 나는 김치 하나만으로도 꿀맛 같은 밥맛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거의 부엌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밥을 해 먹었던 시기이니 밥을 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지금에 비하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요. 그러나 어려운 줄 모르고 모처럼 찾아온 사랑스러운 이질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 보내시려고 서둘러서 밥을 하셨을 이모님의 마음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생애 그렇게 큰 사발 밥을 먹어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다. 가난하게 살던 우리 집 사정을 잘 아시는 이모님의 나에 대한 애착이 단체를 이탈하여 찾아온 조카가 벌을 받더라도 따뜻한 밥 한 사발을 먹여 보내시려는 그 고집을 어떻게 탓하겠습니까.

 

엊그제 이모님 댁에 들렀을 때, 지병인 무릎 관절로 거동이 전보다 더 불편하신 모습을 뵙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모님의 따뜻한 밥사발, 지금도 그때처럼 맛있게 먹을 수는 없을까요?

 

728x90

'잔잔한미소 > 잔잔한미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생각 3월호  (0) 2012.03.21
구접스럽지만  (0) 2012.03.07
우연히 만난 좋은 사람  (0) 2012.02.08
그리 늦지 않았는데.  (0) 2011.12.05
이래서는 안 되는데  (0) 201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