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8일 일요일
오늘 나는 밭에 난 잡초를 뽑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1. 밭농사
밭작물은 작물의 종류도 많지만, 여러 작물을 파종하고, 김매고, 시비하고, 수확하는 일련의 작업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밭농사는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통쾌감은 마치 어려운 산행에서의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에 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농사는 거기서 얻는 소득의 경제성 보다는 생명의 존엄성을 비롯한 흙의 정직성 등 교육적 가치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퇴직 후에 밭농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오 회장님과 강 처사님 그리고 밭 임자 되시는 분께 늘 고마움을 느낀다.
밭일하면서 힘든 일이 어렵지만, 한 가지 일이 끝났을 때의 즐거움에 취하고, 휴식 시간에 이웃과 함께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 맛 때문에 일이 즐겁다.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마시라는 충고를 보내주는 상월의 상은의 말대로 나도 지나친 과로는 피하면서 즐기는 자세로 밭에 간다.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도 없는 사람에 비하여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 근절(根絶)
농사에서 잡초는 농작물의 기생충이요, 생육의 장애요인이다. 그러므로 잡초는 근절해야 한다,
근절은 뿌리근(根)과 끊을 절(絶)로, 뿌리를 뽑아버린다는 의미인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사회악도 근절해야 하고 나쁜 모든 것은 근절해야 하는데 그 근절 방법이 쉽지 않으니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
밭에 나는 풀은 선 호미로 때를 맞춰서 잘 긁어주는 방법을 나는 즐겨 쓰는데, 자칭 선 호미의 도사다.
잡초야 날 테면 나봐라, 내 선 호미가 간다.
3. 분습법
오늘의 잡초 제거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작업에 임해 보니 서로 잔뜩 얽힌 잡초여서 쉽게 끝날 양이 아니었다.
이럴 때는 처음부터 차례로 끝까지 처리하는 것보다 부분적으로 조금씩 양을 정하여 실천하는 방법이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일하면서 언뜻 교육학 용어가 생각이 난다. 전습법 보다 분습법이다.
4. 극락
나는 오늘 극락을 체험했다.
죽어서 극락이라는데 나는 죽어보지 않아서 극락을 모른다.
오늘 땀을 흘리면서 일을 했지만, 일하는 여건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지난가을에 씨를 뿌려놓은 유채가 노란 꽃을 피워서 그 향기가 밭에 그윽하고
얼마 전, 바꾼 휴대전화에 담아 놓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틀어 들으니 그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가끔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의 훈풍이 청량감을 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노동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자체를 즐겁게 생각하고 하는 일은 그 일의 효과를 더 할 수 있다.
오늘같이 꽃향기와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시원한 바람, 이 세 가지가 갖춰진 나의 작업장이라면 바로 그 극락세계가 아니겠는가.
극락은 바로 느끼는 자의 몫이다.
5. 후회
나는 작년 가을에 하루나 씨를 뿌렸는데 올봄에 이렇게 환하고 노란 꽃을 볼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씨를 한 곳에 뿌리지 왜 멀지 않은 옆에 따로따로 두 군데에 뿌렸나 후회도 된다.
무슨 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저기 씨를 뿌린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작업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같은 장소에 뿌릴 걸 그랬다 싶지만, 나뉜 꽃밭 같아서 좋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