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1일
고흐가 누군가? 공주시내 갤러리 6곳에서 동시에 열린 고흐 展을 둘러보는 사이에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에 대하여 좀 알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이번 전시회의 타이틀이 '고흐 향기를 만나다'였는데 공주 시내에 있는 다음 여섯 갤러리에서 1월 29일까지 열린다.
1. 갤러리 수리치(효심 1길7) '편지: 빈센트로부터' 2. 갤러리 쉬갈(봉황로 84) '화가가 되는 길' 3. 대통길 작은 미술관(대통 1길 50 '파리로 향하다' 4. 이미정 갤러리(감영길 12-1 '아를에서' 5. 민갤러리(웅진로 154-4) '생레미까지' 6. 공주문화예술촌(봉황로134) '마지막, 오베로' |
①먼저, 갤러리 수리치에서의 전시 '편지: 빈센트로부터'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로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고 하는 이유는 그의 역동적인 기법과 화려한 색채의 표현으로 자신의 정열적이고 진정성 있는 그림을 많이 남긴 화가라는 것.
고흐의 불꽃같은 열망과 고독한 내면의 기록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이 나와 있다는 것
1872년 8월부터 1890년 7월 죽기까지 그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았던 편지가 무려 668 통이라는 것
반 고흐의 편지 속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신념, 삶의 의미,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등 깊은 고뇌와 생각들이 담겨 있다는 것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다. 우리의 마음과 날씨도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의욕적으로 일하려면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 비극적 삶에의 위로, 형제애
http://goyangtoday.co.kr/View.aspx?No=2499449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대중으로부터 그다지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평생을 홀로 외로움과 싸우며,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고통 속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다. 한때 화상(畵商) 또는 전도사의 길을 꿈꾸었으나 모두 실패했고, 화가로서도 크게 인정받지 못한 채 결국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비극적인 말로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며 예민한 감성과 불타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를 믿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동생 테오가 있었다.
고흐는 각별한 사이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평생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만 650통이 넘는다. 테오는 이 편지들을 죽을 때까지 보관했고,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가 형제의 사후에 편지들을 공개하며 빈센트의 그림과 더불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방대한 편지는 오늘날 반 고흐 형제의 삶에 대한 퍼즐을 맞추는 데 많은 단서를 주고 있다. 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 속에는 당시 그들의 행보, 고민, 생각들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초라한 다락방의 침대 위에 스스로 가슴에 총탄을 쏘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동생 테오의 품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테오는 형이 죽은 이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형이 죽은 지 6개월 만인 1891년 1월 25일, 서른셋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어쩌면 동생에게는 ‘해바라기’ 같았고, 형에게는 ‘별’과 같았을 두 사람의 형제애는 비극적 삶에 주어진 그나마의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https://imh2oo.tistory.com/15712317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는 빈센트 반 고흐의 현재 전해지는 총 903개의 편지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쓴 편지 820개, 받은 편지 83개로 구성되어 있다.[1] 이 중 650개 이상은 빈센트가 그의 남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것이다.[2] 편지 중에는 빈센트가 여동생인 빌이나 다른 친척에게 보낸 것들이나 폴 고갱, 안톤 반 라파르트, 에밀 베르나르와 주고받은 것들도 있다.[3]
테오의 부인이었던 요한나 반 고흐-봉허는 남편인 테오가 1891년 사망한 이후 수 년 동안 편지들을 엮어 1914년 처음 서간집으로 출판하였다. 1966년 편지 셀렉션의 편집자였던 아놀드 포메란스는 테오가 "편지의 가장 작은 조각까지 보존했던 종류의 사람"이라고 썼으며 테오의 이러한 특징 덕에 빈센트로부터 온 663개의 편지들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테오와는 대조적으로 빈센트는 자기에게 온 편지를 잘 남겨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빈센트에게 온 편지는 84개만이 남아 있으며 그중 39개가 테오에게 온 편지이다.[4][5] 그렇지만 오늘날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알려진 많은 사실은 형제간의 이 편지들 덕이다. 현재 빈센트에 대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기는 형제가 함께 파리에서 살아서 편지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었던 때이다. 공쿠르 형제 사이의 편지가 문학 분야에서 그러하듯, 빈센트와 테오 형제 사이의 편지는 그 시대의 예술을 조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6]
②다음 갤러리 쉬갈에서의 '화가가 되는 길'을 보고
빈센트는 1853년에 낳아서 1890년까지 37년 살았는데 화가가 된 것은 27살부터 10년 정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화가가 되기 전에는 학생, 화상(畵商), 선생님, 기숙사 조교, 전도사, 서점 직원 등 직업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고흐는 그 보다 39년 위의 밀레의 농부들의 진솔한 풍경을 종교적으로 표현한 그림들을 좋아하여 밀레를 멘토이자 그의 영웅이 된다.
빈센트는 평생에 걸쳐 그런 밀레의 작품을 묘사한다.
빈센트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밀레는 젊은 화가들이 의지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다른 화가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을 보인다"라는 편지를 썼다.
공주 갤러리 쉬갈에는 고흐가 닮고 싶어 한 밀레의 작품과 비교한 고흐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고흐는 이렇게 처음 화가로서의 길은 멜레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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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다음은 대통길 작은 미술관에서의 '파리로 향하다'이다.
공주시 대통 1길 50에 있는 개러리에는 고흐가 파리, 아를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한다.
동생 테오의 권유로 파리에 간 빈센트는 거기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파리를 떠나 아를로 간다.
거기서 '노란 집'과 화가 공동체에 고갱과 만나지만, 고갱과도 오래가지 못한다.
인상주위 모네는 작품의 소재로 일본의 전통 의상과 물건을 사용하였고 그것들을 수집하였다. 즉 자포니즘의의 요소를 받아들였다는데 고흐도 일본풍의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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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기 영감의 초상화, 일본 화가의 그림을 모사한 작품도 있다.
④이미정 갤러리(공주시 감영길 12-1)의 '아를에서'
1888년 2월부터 1889년 5월까지 고흐가 머물기도 하였으며 해바라기, 밤의 가페 테라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여인 등 300여 개의 작품을 남겼다
1888년 9월에 고흐가 그린 노란 집'은 아를에서 고흐가 살던 집이다.
고갱과 1888년 12월까지 공동 생활하기도 했던 집
아를의 붉은 포도밭은 고흐 생전에 팔렸던 유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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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민 갤러리(공주시 웅진로 154-4)에서의 '생레미까지'
끝 모를 자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던 고흐는 1889년 5월 프로방스 생레미에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병원 주변 풍경을 그린다.
농부를 중심으로 들판에서 행해지는 노동을 화폭에 담았다.
아를을 떠난 후 해바라기 보다 사이프러스 나무, 올리브 나무, 밀밭 등이 소재가 된다.
드디어는 귀를 자르는 사건과 병원에 입원, 요양하고 작품의 심도는 높아지고 죽을 때까지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처한 운명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 같다.
고흐의 파리 근교 오베르 시대는 생의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던 단지 두 달의 짧은 여정. 고흐는 80여 점의 작품을 이곳에서 그렸다. 하루에 1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니 엄청나다.
파리 근교 오베르에서 그려진 고흐의 풍경화는 대부분 야외에서 작업한 것이다. 세기적인 걸작 '별이 빛나는 밤'도 이 시기에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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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공주문화예술촌(공주시 봉황로 134)의 '마지막, 오베로'
빈센트 반 고흐는 133년 전에 죽었다.
1890년 7월 29일에 죽은 후 동생 테오도 고후 사망 후 6개월 후에 죽었다.
고흐의 작품을 관리하는 빈센트 반 고흐 재단을 설립했고 1973년 반 고흐 미술관을 개관했다
고흐는 37년 그의 동생 테오는 34세의 나이로 죽었다.
두 사람의 묘지가 오베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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